할리우드 사인이 한눈에 보이는 로스앤젤레스 집
에디터 신희승 | 포토그래퍼 목예린
할리우드 사인이 내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과 벽난로 앞을 넓게 채운 겨자색 코듀로이 토고 소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곳은 영화 프로덕션 디자이너 제임스 친런드와 아티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클레어 크레스포의 로스앤젤레스 집이다. 자연스럽게 몸을 기대고 편안한 대화가 저절로 이어지게 하는 토고 소파는 집을 찾아온 큰뿔 부엉이를 보살피고 고향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즐기는 두 사람의 삶을 정직하게 담아낸다.
이 인터뷰는 8호 '토고'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실버레이크의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이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할리우드 사인까지 보이는 거실 통창 너머의 전망이다. 하지만 숨을 고르고 집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거실 한가운데 놓인 토고 소파다.
‘ᄀ’자형으로 이어진 겨자색 코듀로이 토고는 벽난로 앞에 넓게 자리하며 공간의 중심을 이룬다. 이 집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두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생각하는지, 이들의 취향이 어떻게 생활과 연결되는지는 결국 소파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제임스는 영화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그는 인물을 공간으로 설명한다. 영화 〈어벤져스〉, 〈라이언 킹〉 등 할리우드의 굵직한 작품에 다수 참여했고, 대런 아로노프스키처럼 안목이 까다로운 감독들과도 꾸준히 작업해왔다. 그는 깊이 연구하고 자세히 관찰하는 일을 반복한다.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지, 왜 그렇게 어질러져 있는지, 어떤 가구를 고를지, 주방의 동선은 어떨지까지 고민한다.
특히 로케이션 헌팅을 하며 실제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는 시간이 흥미롭다고 했다. “누군가의 집에 가서 부엌을 보고, 과일을 어디에 놓았는지 같은 걸 보는게 너무 재미있어요. 왜 그렇게 두었는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는 그런 관찰이 결국 시야를 넓혀준다고 말하며, 열린 사고를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클레어는 작가이자 아티스트다. 음식과 일상, 자연에서 길어 올린 감각을 다양한 작업으로 확장해왔다. 한때 어린이를 위한 요리 프로그램과 책을 만들었는데, 그 세트는 실제로 이 집의 차고에서 제작했다. 제임스가 세트를 설계했으며, 인형과 장치가 함께 등장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딸이 대학으로 떠나며 생긴 허전함 속에서 실버레이크 저수지에 매년 돌아오는 큰뿔부엉이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둥지를 떠나는 새끼 부엉이를 지켜보며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시선이 바뀌었다고 한다. “저는 제가 부엉이를 도와주고 있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문득 깨달았죠.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걸요.”
아이가 둥지를 떠나는 섭리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부모의 마음을 자연의 질서 안에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 경험은 결국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녀의 작업은 설명보다 감각에 가깝고, 의도보다 진심에 가깝다. “아이들이 바로 반응하면, 그건 진짜라는 뜻이에요. 진심이 아니면 바로 알아요.”

두 사람의 직업은 다르지만,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서로 닮아 있다. 관찰을 기반으로 하고, 공간과 감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에서다. 그 태도는 집 안을 꾸미거나 물건을 선택할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20여 년 전 처음이 집에 들어왔을 때, 집안은 이전 거주자들이 원래 형태를 조금씩 확장한 상태였다. 전망은 좋았지만, 구조가 단순했고 개성도 부족했다.
제임스는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동네였고, 딸아이가 커가면서 가족이 살 공간이 필요했어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집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다만 집이 너무 밋밋해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리노베이션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했지만, 집의 분위기를 완성한 것은 토고였다. 처음에는 보는 순간 반해버린 초록 토고를 들였고, 18년간 사용한 뒤에는 겨자색 코듀로이 패브릭 토고로 바꾸었다.
토고는 보기와 달리 가볍다. 모듈을 분리해 다른 공간으로 옮겼다가 다시 합쳐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다. "자유롭게 분리했다가 다시 모을 수 있는 구조가 좋아요. 들에 박히지 않았죠." 클레어의 말에 제임스가 덧붙였다. "가구는 보통 딱딱하고 포멀해서 선택의 폭이 좁아요.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았어요. 행복한 의자처럼 보였죠. 장난스럽고 판타지 같았어요."

양쪽 소파를 이어주는 코너 피스 역시 클레어의 마음에 쏙 드는 요소였다. "코너에 앉으면 그냥 몸을 기대게 돼요. 지금도 가족이나 손님이 앉으면 자연스럽게 편안한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요. 캐릭터는 분명한데, 압도적이지는 않아요.
제임스는 소파를 선택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비슷해요. 그런데 토고는 모험적인 느낌이 있어요. 누군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죠." 그는 토고가 한번 선택하면 쉽게 바꿀 수 없는 가구라고 덧붙였다. "이걸 사면 나중에 와서 천을 바꿔달라고 할 수 없어요. 일단 고르고 나면 그대로 가야 해요. 그만큼 확신이 있어야 하죠."
같은 모델을 두 번이나 선택했다는 것은 이 가족의 시간이 하나의 선 위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패브릭의 변화는 그 시간의 다른 장면을 구분해주는 작은 표식처럼 보인다.

제임스는 하루 종일 공간과 스케일을 다루기 때문에 집에서는 단순하고 정돈된 상태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 단순함은 비워진 미니멀리즘이라기보다 오랜 관찰이 응축된 상태에 가깝다. 반면 클레어는 미니어처에 열광하고 이를 수집한다.
런던의 오래된 가게에서 발견한 미니어처 오토마타는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보물 중 하나다. “먼지 쌓인 가게였어요. 앞방에는 장난감이, 안내받은 뒷방으로 가면 더 특별하고 작은 것들이 있었죠. 그걸 보고 정말 정신이 나갈 뻔했어요.” 누군가의 손길로 완성된 작은 세계의 정교함은 그녀를 설레게 한다. “집에 불이 나면 이걸 들고 나갈 거예요(웃음).”
마리 콘도의 조언을 떠올리며 물건을 줄여보려 다짐한 적도 있지만 쉽지 않았다고. “이 집에 들여온 물건들은 다 제게 기쁨이에요. 그래서 정리가 잘 안 돼요(웃음).” 이 차이는 집 안에서 균형으로 작동한다. 작은 물건들이 많지만 공간은 어수선하지 않다. 토고는 그 중심에 자리한다. 낮고 열린 구조의 토고는 서로 다른 두 감각을 같은 높이에서 만나게 하는 접점처럼 보인다.

제임스와 클레어는 수줍은 편이지만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좋아한다. 제임스에게 집 안의 사연 있는 오브제들은 대화를 여는 장치가 된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집이 저 대신 말해줘요. 따뜻한 느낌을 말없이 전달하죠.”
클레어는 그 대화를 음식으로 이어간다. 루이지애나 출신인 그녀는 파티를 열 때 고향 음식을 자주 요리한다. “여기 LA 사람들은 ‘이게 뭐야?’ 하고 놀라요.” 낯선 맛은 그들이 꾸민 공간과 겹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만든다.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을 묻자, 클레어는 “돈보다 설렘”이라고 답했다. 상상이 가능하고 마음이 움직이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제임스는 영화 작업이 기간도 길고 오래 집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말 신뢰할 수 있는 프로젝트만 선택해요.” 광고와 패션 작업이 감각을 깨우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면, 영화는 훨씬 더 응축된 에너지를 요구한다. “수천 개의 선택이 쌓여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이루는 거죠. 그 축적이 관객을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요.”

토고는 그들이 삶을 사는 태도와 닮아 있다. 형태가 분명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규칙에서 약간 비껴 있으면서도 생활을 견딘다. 18년을 버텨낸 초록 커밋 소파도 그랬고, 지금 우리가 마주 앉은 겨자색 소파도 그렇다.
제임스는 장 프루베처럼 건물과 가구, 생활 방식을 하나의 구조로 설계한 디자이너를, 클레어는 “머핏 인형을 닮은, 사탕 같은 의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취향은 다르지만 형태가 가진 태도에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 집에서 토고는 중심이지만 과하지 않다. 몸을 감싸는 구조와 낮은 높이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앉게 하고, 기대게 하고, 머물게 한다. 그 안에는 그들의 관찰과 장난기, 그리고 함께 지나온 시간의 결이 토고의 주름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 어쩌면 이 집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토고에 앉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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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08 TOGO
1973년 미셸 뒤카로이가 디자인한 토고는 전통적 소파의 규범을 벗어난 형태입니다. 특유의 주름진 표면과 바닥에 직접 닿는 낮은 좌면, 올폼 구조의 내부는 당대 소파의 디자인 관습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혁신성을 제시합니다. 1960‐1970년대 사회·문화적 변화를 갈망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며 ‘시대 정신’을 반영했던 토고의 매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팬데믹 시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조명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토고는 단순한 가구를 넘어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