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는 그시절 레디컬 디자인의 실험장

에디터 |유다미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유럽에서는 대중문화와 TV방송, 패션 잡지와 광고 이미지가 빠르게 퍼지며 취향과 생활 방식이 급격히 바뀌었다. 거실은 고상한 살롱에서 자유로운 아지트로 변모했고, 소파는 그 변화의 중심이 됐다. 팝아트의 강렬한 색과 유머, 산업 소재의 감각이 디자인에 스며들면서 소파는 더 커지거나 낮아지고, 더 말랑해지거나, 더 과감해졌다. 동시에 사회 곳곳에서는 해방과 자유, 권리 신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젊은 세대는 기존의 규칙과 위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거실에서도 몸과 관계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앉아왔던 방식 대신 새로운 몸의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형태를 제안했다. 그 결과 폴리우레탄 같은 신소재와 모듈 구조가 이를 가능하게 하며, 소파는 변화하는 시대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담아낸 레디컬 디자인의 실험장이 되었다. 토고가 탄생한 이 시기 각 소파들을 형용하는 풍성한 어휘들은 시대가 추구했던 휘황찬란한 기질을 설명한다.

이 콘텐츠는 8호 '토고'에 실린 기사입니다.







보보릴렉스 Boborelax (1967)

디자이너: 치니 보에리 Cini Boeri

제조사 : 아르플렉스 Arflex

치니 보에리는 전후 이탈리아 디자인을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로, 가구를 ‘소유’가 아니라 ‘사용’의 관점에서 다시 정의하며 생활 방식의 변화에 맞게 디자인 신을 선도한 인물이다. 보보릴렉스는 보에리의 보보 Bobo 시리즈 중 하나로, 거실의 고정된 규칙을 다른 방식으로 재편하려는 보에리의 급진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델이다. 제조사인 아르플렉스는 신소재와 구조 실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1960~70년대 이탈리아 소파 디자인의 혁신을 앞서 이끌었다. 치니 보에리의 보보 시리즈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폴리우레탄을 중심으로 형태와 착석감을 구축했으며, 말랑한 볼륨 자체로 기대고 눕는 자세가 되도록 소파의 형태를 만들었다.





럼블 Rumble (1967)

디자이너: 잔니 페테나 Gianni Pettena

제조사 : 폴트로나바 Poltronova

럼블은 소파라기보다 커다란 직사각형 덩어리들이 방 한가운데 놓인 모습이다. 사뭇 키즈 카페에 온 것 같기도 하다. 각 모듈을 프레임 안에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단정하게 둘러앉을 수도, 자유롭게 널부러져 있을 수도 있어 ‘정답 없는 공간’이 된다. 이 소파가 재미있는 이유는 휴먼 스케일을 훌쩍 넘어서는 덩어리감에 있다. 19세기 예술가들이 넓은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생활하던 풍경에서 출발한 럼블은, 거실에 한켠에 아늑하게 들어맞는 소파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대신 큰 공간 한가운데 놓여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한 부피감과 존재감을 갖춘 형태로 완성했다. 결국 럼블은 앉는 가구라기보다, 방 안에 새로운 자리와 장면을 만들어주는 하나의 덩어리다.






수페론다 Superonda (1967)

디자이너: 아르키줌 아소치아티 Archizoom Associati

제조사 : 폴트로노바 Poltronova

아르키줌 아소치아티는 1968년 학생·노동자 시위의 분위기 속에서 전통과 부르주아적 가치가 지배하던 생활 공간의 규칙을 의심했고, 급진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로 사용자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끌어내는 가구를 제안했다. 그중 수페론다는 프레임 없는 소파 가운데 가장 초기 모델 중 하나로 꼽히는 가구다. 정사각형 폴리우레탄 블록을 S자 형태로 절단해 만든 두 개의 물결 모양 구조로 이루어진 모습으로 두 파트를 서로 맞물리거나 위로 쌓아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며, 소파는 물론 침대나 긴 의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화이트·블랙·레드 세 가지 기본 색상의 광택 있는 인조 가죽 커버는 팝아트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다







소포 Sofo (1967)

디자이너: 슈퍼스튜디오 Superstudio

제조사 : 폴트로노바 Poltronova 소포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래디컬 디자인 그룹 슈퍼스튜디오가 만든 모듈형 소파로, 전통적인 소파의 형태를 해체하고 ‘조합’ 자체를 디자인으로 삼은 제품이다. 기본 유닛은 정육면체 덩어리를 S자 형태로 잘라낸 모습이며 사용자는 이 모듈을 기차처럼 길게 일렬로 이어 붙이거나 층층이 쌓아 올려 단단한 덩어리 형태의 좌석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즉, 소포는 누군가가 정해둔 완성형 가구가 아니라, 공간과 상황에 따라 계속 재배치하며 확장하는 시스템이며, 슈퍼스튜디오가 꿈꿨던 유토피아적 생활 방식과 인테리어의 규칙을 흔드는 실험정신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구현한 소파다.






아스마라 컴포지션 Asmara Composition (1967)

디자이너: 베르나르 고벵 Bernard Govin

제조사 : 리네로제 Ligne Roset

고탄성 폴리우레탄 폼으로 구성한 모듈 소파로, 패브릭을 입힌 오목하고 볼록한 곡선이 연속되며 하나의 지형처럼 펼쳐진다. ‘로우 룩 Low look’으로 일컬어진 아스마라는 기존 소파의 보편적인 높이와 자세에서 벗어나, 바닥 중심의 생활 감각을 반영한 초기 사례다. 세 가지 모듈을 조합해 유기적인 곡면 구성을 무한히 조합할 수 있으며, 수량에 따라 크기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구성에 따라 기대기·눕기·걸터앉기 등 다양한 자세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것이 특징. 가구를 단순한 좌석이 아닌 생활의 기반으로 해석한 이 시도는 미국 <보그>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 소개하며 동시대적 전환을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평가했다.






사파리 Safari (1968)

디자이너: 아르키줌 아소치아티 Archizoom Associati

제조사 : 폴트로나바 Poltronova

유닛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풍경이 달라지고, 강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소파다. 1960년대 말 특유의 실험적인 형태 감각과 구조적 상상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팝아트의 영향 아래 기능주의를 풍자하고, 장식과 키치, ‘기괴함’을 전략적으로 끌어들여 기존의 디자인 질서를 뒤틀었다. 각 좌석은 입방체 형태로 만들어져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인조 모피와 표범 패턴은 셔틀콕, 햄버거 등 일상적 사물을 거대한 크기로 확대해 설치한 아티스트 클레이즈 올덴버그 Claes Oldenburg의 언어에 호응하는 문화적 제스처였다. 사파리는 편안함을 과감한 이미지로 드러내며, 거실을 단정한 공간에서 낯설고 유쾌한 무대로 바꿔놓는다.





업 시리즈 5,6 Series 5,6 (La Mamma, Donna) (1969)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세 Gaetano Pesce

제조사 : 비앤비 이탈리아 B&B Italia

풍만한 여성의 신체를 닮은 곡선형 실루엣 UP 5 , 그리고 볼처럼 연결된 오토만 UP 6이 세트다. 포근한 안락함을 앞세우면서도, 여성이 사회적 편견과 구속에 묶여 있던 현실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가에타노 페세의 아이디어다. 이 과감한 조형은 1969년 B&B 이탈리아가 축적해온 폴리우레탄 사출 성형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구현되었고, 디자인과 산업 생산의 경계를 적극적이고도 실험적으로 내보인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다만 여성의 해방을 말하는 표현 방식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상징이라기보다 과장된 기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직설이 당시의 시대가 말하던 방식이라는 점은 너그럽게 눈감아주자.





보카 Bocca (1970)

디자이너: 스튜디오65 Studio65

제조사 : 구프람 Gufram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의 초현실주의를 현실화한 가구이자 작품이다. 달리의 설치 작품 ‘메이 웨스트 룸Mae West Room’ 에서 출발한 이 디자인은 초현실주의의 장난기와 팝아트의 대담함을 품고, 소파라는 기능과 조형물로서의 존재감을 내비친다. 보카 Bocca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입’을 뜻한다. 1960년대 패션 잡지가 만들어낸 가십과 미의 기준은 외모가 내면보다 우위에 놓인다는 감각을 굳혀놓았는데 보카 소파는 그 시대의 화려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소파는 편안함을 앞세우기보다 시선을 붙잡고, 공간의 중심을 단숨에 장악하는 힘을 지닌다. 1960~1970년대 이탈리아 래디컬 디자인의 감각을 대표하는, 앉을 수 있는 팝아트 오브제다.






프라토네 Pratone (1971)

디자이너: 조르조 체레티 Giorgio Ceretti · 피에트로 데로시 Pietro Derossi · 리카르도 로소 Riccardo Rosso

제조사 : 구프람 Gufram

42가닥으로 이루어진 작은 숲. 프라토네는 ‘거대한 풀밭’이라는 이름처럼, 커다란 잔디 덩어리 속에 몸을 파묻듯 기대도록 고안한 라운지 시트다. 폴리우레탄 폼으로 빚어낸 거대한 잔디밭은 자연을 갈망하던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또한 새롭게 부상하던 산업 재료로 자연의 형상을 구현해, 자연과 인공의 강렬한 대비를 드러내려는 의도도 담겼다. 유쾌하고 재치 있는 형태만큼이나 1970년대 래디컬 디자인의 상상력을 상징하며, 소파라는 형식을 가장 대담하고 극적으로 연출했다.






테라짜 Terrazza (DS-1025) (1974)

디자이너: 우발트 클루그 Ubald Klug

제조사 : 드세데 de Sede

테라짜는 이탈리아어로 테라스, 그리고 층층이 단차가 이어지는 계단식 경작지를 뜻한다. 이 소파 역시 이름처럼 스위스의 어느 산골 포도밭에 펼쳐진 구불구불한 산비탈의 리듬을 보는 것 같다. 계단형 단차가 이어지는 소파의 모듈 구조는 유닛을 조합하는 방법에 따라 길이와 구성을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고, 그 굴곡은 산과 계곡을 연상시키며 공간 속에 다이나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스프링이나 다리, 드러난 골조 없이 폼 소재를 조립해 형태를 세우고, 스위스 가죽 장인 기술로 완성한 정교한 세공이 1970년대 특유의 조형 감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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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TOGO 표지

Issue.08 TOGO

1973년 미셸 뒤카로이가 디자인한 토고는 전통적 소파의 규범을 벗어난 형태입니다. 특유의 주름진 표면과 바닥에 직접 닿는 낮은 좌면, 올폼 구조의 내부는 당대 소파의 디자인 관습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혁신성을 제시합니다. 1960‐1970년대 사회·문화적 변화를 갈망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며 ‘시대 정신’을 반영했던 토고의 매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팬데믹 시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조명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토고는 단순한 가구를 넘어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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