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낭 부룰레크가 브르타뉴 별장에서 하는 일

유승주

바다 내음이 먼저 반기는 로낭 부룰레크의 집. 이곳에는 담쟁이덩굴과 라벤더, 수국, 베리류 식물들이 자라는 야생 그대로의 정원과 어디에서나 누릴 수 있는 오션 뷰가 있다. 집 안에는 직접 디자인한 가구, 드로잉과 세라믹 부조를 비롯해 이름 모를 빈티지 가구, 전통적 도자기 인형, 아끼는 핀란드 디자인 제품들이 단란하게 놓여 있다.

이 인터뷰는 6호에 '스툴 60'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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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줄곧 파리에서 지냈죠? 파리에서 이곳 브르타뉴까지 3시간 이상 소요되는 기차 여행 중에는 주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드로잉을 즐깁니다. 외딴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림은 저의 유일한 친구이자 소통 수단이었죠. 그 습관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 펜과 종이면 충분해요. 티켓이나 냅킨도 좋은 소재가 되고요. 저에게 드로잉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예요. 디자인이 다수가 협업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면, 드로잉은 혼자만의 개인적 영역에서 내면의 여러 감정을 표출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까지도요. 그러다 출출하면 매점에서 파는 크로크무슈를 사 먹죠.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에요.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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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나고 자란 당신에게 이곳은 어떤 도시인가요?
참 흥미로운 곳이에요. 부모님 세대만 해도 켈트어파에 속하는 브르통 Breton어를 사용하며 프랑스어를 배워야 할 만큼 독자적인 문화가 있었어요. 또 전통적으로 농부와 어부의 사고방식이 서로 맞닿아 있죠. 저는 둘 다 관심이 있긴 한데, 바다에 좀 더 친근한 것 같아요. 열다섯 살 때부터 서핑을 즐겼고, 1년 내내 수영을 하거든요. 물속에 있으면 스스로 대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고향을 떠나 열여덟 살에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요, 그 시절 건물은 요즘보다 짙은 회색 톤이었고, 차는 엄청나게 많았고 빠르게 달렸습니다. 생드니에서도 지냈지만, 결국 마음은 언제나 브르타뉴였어요. 왜 그런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네요.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이 집에서는 그저 가만히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감상할 뿐인데 말이죠. 정말 감동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것을 느끼는 일은 피곤하답니다. 지금도 보세요. 빛과 바람, 하늘과 바다가 움직이고 있잖아요?
창작가로서 무수한 정보를 쉴 새 없이 민감하게 수집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겠어요.
물론 늘 관찰만 하는 건 아니에요.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소중하죠. 여름이면 모두 이곳에 모여 활기찬 분위기를 즐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겨울이 되면 이곳은 한없이 고요합니다. 거의 아무도 없다고 보면 돼요. 거센 폭풍이 등대를 덮칠 정도로 파도를 몰아칠 때에도, 벽난로 앞에서 고양이와 함께 따스한 평화를 즐기죠. 가끔은 낚시를 좋아하는 이웃 할아버지가 같이 식사하자고 노크를 해요. 덥수룩한 수염이 헤밍웨이를 떠올리게 하는 분이죠. 오늘도 직접 잡은 싱싱한 생선을 건네주셨어요.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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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일체가 된 이 한적한 곳은 어떻게 발견했나요? 독특한 공간에 이끌려 정착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서른 살 무렵이었어요. 경제적 상황에 맞게 여기에서 100km가량 떨어진 곳에 작은 농가 주택을 한 채 구입했죠. 주변에 이웃 하나 없는 외진 곳이었어요. 그때부터 매일 부동산 웹사이트를 보며 집 구경을 했는데,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러다 어느 날 이곳을 찾게 된 겁니다. 물에 떠 있지는 않지만 바다와 맞닿아 있어 보트 하우스 같았달까요? 심지어 가장 아래층 공간은 건물의 기초이자 벽의 일부로서 자연 그대로의 암반이 실내에도 형성되어 있어요. 환경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형태가 단번에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침 이 지역을 방문할 일이 있던 터라 곧바로 직접 보러 왔죠.
독특하게도 과거 숙박 시설과 정어리 통조림 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때 이 지역의 시장이 살기 위해 지은 주택이었다고 해요. 그다음에는 레스토랑이 딸린 여관, 즉 오베르주 Auberge였고요. 19~20세기 당시엔 여주인이 운영했는데, 화가와 문인 등 수많은 예술가가 방문했다고 해요. 몇 달씩 장기 체류하며 창작 활동을 벌이던 이들 중에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에밀 조르댕 Émile Jourdan도 있었죠. (거실 커튼 뒤에서 에밀 조르댕의 그림을 가져와 보여주며) 주방에서 일하는 그녀의 도드라진 턱선을 강조한 걸 보세요. 이 작품은 미술사 전문가이자 캥페르 미술관의 관장 덕분에 경매에 참가해 낙찰받았습니다. 그 뒤로 이 건물은 인근의 정어리 공장 세 곳 중 하나였어요. 그 후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군인들에게 점령되었고, 독일인이 살았다고 해요. (그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100장 넘게 촬영한, 독일인이 살던 당시의 다양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독일식 가구, 타일 바닥과 장식용 난로를 비롯한 이 알록달록한 인테리어는 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이후 다른 사람들이 거주했고, 제가 10년 전에 구입한 거죠.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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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라의 슬로 체어 Slow Chair부터 마티아치 Mattiazzi의 MC15 퀸디치 QUINDICI 라운지체어까지. 창가마다 직접 디자인한 의자를 놓은 것 역시 눈에 띕니다. 마치 무대를 향한 관객석 같다고 할까요. 특별히 마음을 이끈 풍경이 있나요?
집이 동향이라 오전에 볕이 잘 드는데,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색의 변화가 참 재미있어요. 특히 12월부터 2월까지의 하늘색은 정말 아름다워요. 이른 아침과 해 질 녘에는 분홍빛을 띠고, 자연스레 바다 색도 붉게 물들죠. 겨울이면 바다 건너편 녹색식물들이 주황색으로 바뀌는데, 햇살에 반사되면 추운 계절인데도 무척 따뜻해 보여요. 여기 테라스 가장자리의 울타리처럼 무성히 자란 아메리카 담쟁이덩굴 역시 쌀쌀해지면 잎이 붉게 변하죠. 핀란드의 알바 알토 주택에도 같은 식물이 자라고 있는 걸 봤어요. 우연의 일치였지만 정말 반갑더라고요.
바닷가라는 척박한 환경에선 빛의 역할도 매우 중요할 것 같아요. 플로스 Flos의 세라미크 사이드Céramique Side, 잉가 셈페 Inga Sempé의 마틴 Matin과 프랑스어로 ‘반딧불이’를 뜻하는 람피르 Lampyre/w163 램프도 있네요. 다이닝 룸에만 조명이 5개가 넘는 것 같아요.
자연광이 제일 좋지만, 겨울을 나는 동안에는 조명의 색온도에 신경 쓰며 간접조명을 레이어링해요. 불도 자주 켜는데, BD 바르셀로나 BD Barcelona와 카이 프랑크 Kaj Franck의 캔들 홀더를 사용하고 있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토록 아름다운 환경은 당신의 예술적 삶에 어떤 영감을 불어넣나요
집을 둘러싼 풍경은 의식의 경계를 넘어 잔잔한 안개처럼 제 안에 스며듭니다. 단순히 ‘저 바다와 나무의 색을 내 작품에 채용해야지’ 같은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저 스스로에게 빼놓지 않고 던지는 질문이 있는데, 바로 ‘이 디자인을 테라스에 놓았을 때 조화로울까?’입니다. 다시 말해, 주변의 순수한 본질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상상하죠.
테라스에 있는 헤이 Hay의 팔리사드 Palissade 셰즈 롱그는 잔잔한 바다 물결을 닮아 그림자조차 넘실대는 듯합니다. 실내 곳곳에 자리한,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해 완성한 작업물과도 잘 어우러지고요. 이처럼 본인이 디자인한 사물로 채운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는 경험은 창작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자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만든 가구를 집에 두고 직접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완성된 결과물일지라도 일상에서 마주하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생겨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실내 공간이 여유롭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면 그만이라 한결 편해졌습니다. 비판적 시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여전하지만요. 집에서 저만의 앵글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하는데요, 환경, 사물, 제 자신 사이의 관계를 가감 없이 보여주죠. 저는 오래돼 낡은 건물과 현대적 디자인처럼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집은 일종의 테스트베드로도 기능하죠.
직접 디자인한 가구 외에 스툴 60부터 테이블과 스크린 100까지, 당신이 제일 존경하는 디자이너로 꼽은 알바 알토의 가구도 눈에 띕니다. 많은 이름 중 알바 알토를 선택한 이유와 그의 디자인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궁금합니다.
2010년쯤 알바 알토의 세미나에 초청받았는데, 핀란드에서 그의 건축물을 탐방하며 큰 감명을 받았어요. 문손잡이, 벽의 질감, 창문 크기, 심지어 식물의 위치까지 고려한 디테일에 매료되었죠. 건축가는 아니지만 관계성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고, 그를 향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는 화가로서도 뛰어났어요. 영역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은 제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오직 한 분야만 전문으로 다뤄야 했기에, 저의 드로잉은 ‘예술’이 아닌 ‘디자이너 드로잉’으로 여겨졌죠. 아울러 알바 알토의 스툴이나 이딸라의 유리 제품을 특정 계층이 아닌 누구나 향유하는 것처럼, 핀란드의 ‘민주적인 디자인 접근 방식’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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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뿐 아니라 파리 스튜디오와 집에서도 그의 가구를 사용한다고요? 디자이너 겸 유저로서 스툴 60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가볍고 편안해요. 별도로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여러 개를 쌓아둘 수도 있죠. 제가 갖고 있는 스툴 60은 헬싱키의 아르텍 세컨드 사이클 Artek 2nd Cycle 숍에서 10년 전에 찾은 거예요. 개인적으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물건에 애착을 느끼거든요. 첫 알바 알토 가구는 다이닝 룸 한가운데 있는 검은색 상판의 테이블이에요. 15년도 훨씬 전에 런던의 트웬티트웬티원 Twentytwentyone에서 구매했죠. 헬싱키의 한 카페에서 사용하던 제품인데, 상판 아래에 학생들이 장난스럽게 붙여놓은 껌 자국이 남아 있답니다.
2015년은 스툴 60을 최초로 구매한 해이자, 아르텍과 협업을 처음 시작한 때이기도 하네요.
한때는 아르텍이 이미 20세기 디자인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해 굳이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것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아르텍과 첫 작업으로 카리 Kaari 컬렉션을 선보이며 관점이 달라지게 되었죠. 핀란드어로 ‘아치’를 의미하는 카리는 실용적 건축 구조를 활용했습니다. 테이블 상판과 선반의 수직 하중을 나뭇조각이 지탱하는 동시에, 아치형 강철 밴드가 지지력을 보조하는 구조예요. 저는 알바 알토의 구부린 합판, 즉 ‘L자형 다리’에 깊은 영감을 받았고, 이는 제 디자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콘솔, 선반 등 각기 다른 용도의 가구에 같은 접근 방식을 구사하는 일은 쉽지 않은 도전 과제였어요. 저는 이 시스템이 의자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컬렉션에서 의자 디자인은 제외했습니다. 그 대신 카리 컬렉션의 캠페인 이미지에 스툴 60을 함께 배치했죠.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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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알바 알토 모두 단순함, 명료함, 기능주의, 그리고 인간 중심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네요. 이러한 맥락에서 진정으로 ‘좋은 의자’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착석의 편안함은 기본이고, 한마디로 ‘티백을 닮은 의자’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뜨거운 물에 티백을 넣으면 마법처럼 물의 맛과 향이 변하듯, 빈 공간에 두었을 때 그곳의 분위기를 바꾸는 힘을 지닌 의자요. 또한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해야 하죠. 제가 20~30년 전 고안한 의자가 지금도 생산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디자인하면서 늘 미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봐요.
마지막으로 공통 질문을 드릴게요. 가장 좋아하는 의자는 무엇인가요?
미하엘 토네트 Michael Thonet의 체어 No. 14입니다. 섬세한 곡선에서 공예미가 느껴지면서도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산업적 효율성이 높은 제품이죠. 심미성과 기능성의 균형을 잘 갖춘 의자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Magazine C Stool 60 표지

Issue.06 Stool 60

1933년 건축가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스툴 60은 핀란드인의 일상과 함께해온 의자입니다. 유치원, 학교, 도서관, 시청 등 다양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자리하며, 기능과 쓰임을 사용자의 필요에 맞춰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의 민주적 가치'를 상징합니다. 알바 알토는 단단하고 치밀한 핀란드산 자작나무를 사용해 내구성을 높이고, 합판 곡목 기법으로 만든 L자형 다리를 적용해 제작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그 결과, 폭넓은 활용 가능성과 대량생산의 잠재력을 지닌 의자가 탄생했습니다. 스툴 60은 인간 중심의 건축을 추구한 건축가가 세상에 내놓은 가장 인간적인 의자라 불릴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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