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 건축가가 수집한 의자 컬렉션

에디터 김선진 | 포토그래퍼 전미연

밀라노에 위치한 리소니 파트너스 오피스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자리한 피에로 리소니의 아파트는 그가 추구하는 ‘편안함’의 개념을 온전히 담아낸 공간이다. 르코르뷔지에의 제자들이 설계한 건물 내부 한가운데 흰색 그랑 콩포르를 배치한 그의 홈 컬렉션은 수십 년에 걸쳐 모은 수집품과 어우러지며, 리소니의 디자인 철학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 인터뷰는 매거진C 4호 ‘포퇴유 그랑 콩포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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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늘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오늘도 뉴욕에서 밀라노로 오랜 시간 비행을 마치고 왔습니다. 뉴욕 시간으로는 지금 새벽 4시니까, 꽤 피곤하네요.(웃음) 언제나 그렇듯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선보일 수많은 신제품을 준비하고, 전 세계 건축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광저우, 도쿄, 마이애미, 멕시코 시티, 사우디아라비아, 상파울루,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까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놀라운데요. 모든 일정을 소화하려면 얼마나 자주 비행해야 하나요?
1년의 반은 밀라노에서 보내고, 나머지 반은 전 세계 곳곳에서 보내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시차 적응은 매번 어려워요.(웃음)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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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무척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인데, 이곳에서 산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4년 정도요. 이 아파트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르코르뷔지에의 제자로 일했던 두 건축가가 밀라노로 넘어와 처음으로 지은 건물로, 내부는 제가 전부 새로 설계했습니다. 어느 방에나 창문이 훤히 나도록 개조해 채광이 정말 아름답죠. 늘 빛으로 가득 차 있어 대부분 지금처럼 조명을 켜지 않고 지내요. 두오모 Duomo, 몬테나폴레오네 Montenapoleone와 가까운 밀라노의 중심에 있지만 여러 공원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개인 정원도 딸려 있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좋아요. 여름이 되면 온통 녹음으로 가득합니다.
레노베이션 과정은 어땠을지 궁금한데,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벽과 문을 거의 다 없앤 것이 가장 큰 특징이죠. 유리 장식장이나 불투명 슬라이딩 도어로 구획을 나눴어요. 테라스 쪽 유리창을 바닥까지 내려오도록 시원하게 넓혀 정원과 집 안을 자연스러운 높이로 연결한 것도 포인트예요. 이런 식으로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연결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건축적 소음(architectural noise)’을 소거하는 과정이죠. 소파나 의자를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등받이나 높이가 있는 디자인은 집 안에 ‘시각적 소음’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단순하면서도 튀지 않는 디자인이 이상적이죠.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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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미니멀리즘’이기는 하지만 컬러풀하고 실험적인 제품 디자인도 많이 선보였는데, 벽은 완전히 흰색으로 꾸몄네요. 의외입니다.
컬러의 열렬한 팬이긴 하지만, 제가 컬러를 컨트롤하는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흰색은 제가 가지각색의 색깔과 새로운 패턴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면 돌아오는 곳이에요. 몇 가지 다른 종류의 흰색이나 어두운 회색으로 돌아오죠. 사무실 벽도 전부 흰색입니다.
집 곳곳에서 폴 케르흘름 Poul Kjærholm, 도널드 저드 Donald Judd, 한스 웨그너 Hans Wegner까지 다양한 국적과 스타일의 가구가 눈에 띄는데 ‘수집’ 활동도 즐기나요?
아내 베로니카와 제가 각자 몇십 년간 모아온 거예요. 이탈리아 디자인, 북유럽 디자인, 1950년대 디자인, 대학 시절 처음으로 구매한 의자까지 모든 수집품은 제게 디자인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들이죠. 이 집 저 집 옮겨다닐 때마다 저를 아주 오랜 시간 따라다니고 있어요. 미술 작품과 책, 유리병이나 공예품도 모으는데 가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까먹기도 하지만, 제 삶의 일부나 다름없어 함부로 버리지는 않아요. 주방 선반을 가득 채운 증조모의 오래된 유리잔, 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은 일본화, 베니스·파리·뉴욕 등 여행지에서 모아 온 것들이 그렇죠. 밀푀유를 만드는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 위에 또 다른 이야기를 겹겹이 올리고, 이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무척 신중하게 쌓아온 컬렉션으로 느껴집니다. 함께 결합하고 배치한 비결이 있나요?
소파, 의자, 테이블, 주방, 침대, 책장 각각 따로따로 골랐음에도 잘 어우러지죠. 까시나, 비앤비 이탈리아, 포로, 보피, 카르텔 등 수많은 브랜드 제품이 섞여 있지만, 디자인만 놓고 보면 수상할 정도로 조화로워요. 일반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제품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쉽지 않은데, 디자인이 모두 뛰어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요소가 결합되어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저는 타임리스한 디자인에서만 진정한 편안함을 느낍니다. 앉았을 때의 편안함 말고요.(웃음) 또 의자를 2개씩 짝지어 구매해 나란히 배치하는 걸 좋아하죠. 프랭크 게리 Frank Gehry의 크로스체크 암체어 Cross Check Armchair나 찰스 & 레이 임스 Charles & Ray Eames의 라 셰즈 La Chaise는 예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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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퇴유 그랑 콩포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요. 거실에 놓인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언제, 어떻게 구입한 것인가요?
밀라노의 까시나 스토어에서 1992년쯤 샀어요. 벌써 100여 년 전 디자인이라는 게 놀라곤 하죠. 르코르뷔지에가 파리 현대 장식예술 국제 박람회를 위해 설계한 에스프리 누보관의 사진을 보면, 오리지널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흰색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흰색을 선택했죠.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업을 오래전부터 흠모했는데 그중에서도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암체어의 개념을 설명하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극도로 아름답지만 꽤 불편하기도 한데, 그게 바로 제가 포퇴유 그랑 콩포르에 열광하게 된 이유죠. 토스카나 집에도 4개 가지고 있어요.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이름부터 ‘거대한 안락함’을 뜻하는데,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디자인은 기능성도 중요하지만, 완벽할 필요는 없어요.(웃음) 저는 동반자를 고르는 것처럼 의자를 고르는데,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파트너죠. 넓은 좌석의 그랑드 모델은 특히 더 크고, 납작하고, 낮아서 아름다워요. 완벽한 비율입니다.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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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포퇴유 그랑 콩포르의 아름다움은 ‘건축적’ 면모와 관련이 있나요?
맞아요. 건축가들이 만드는 공간과 그 속의 가구는 특별합니다. 저도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디자인했지만, 제가 만든 제품이 어떤 환경에 어떤 모습으로 놓일지는 미지수거든요. 그때부터는 제 손을 떠난 일이죠. 이런 점에서 산업디자인은 어느 정도 단절되어 있는데,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가구에는 일관된 ‘코드’가 분명 존재해요. 그런 점에서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포퇴유 그랑 콩포르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항상 이러한 감각을 작업에 반영하려고 하죠.
건축적 감각을 느끼고, 이를 작업에 반영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과정을 뜻하나요?
사람들은 ‘황금 비율’과 같은 키워드를 언급하는데, 저는 아름다운 비율의 감각은 제 시선과 영혼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집과 가구를 완성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과 사람,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결하는 거죠. 건물을 지을 때는 주변 환경과의 접점을, 가구는 공간이 매개하는 다양한 인간 활동을 고려해 디자인합니다. 다양한 구조적 제약을 해결해야 하는 건축에 비해 가구는 좀 더 다이내믹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차이는 있지만, 두 분야 모두 휴먼 스케일 human scale을 기준으로 하는 작업이죠. 그 과정은 건축가가 자신의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고요.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 Mies Van Der Rohe 같은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이 거대하고 텅 빈 건축물을 만든 뒤, 그 속에 놓일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가 된 것처럼요. 이 과정에서 가구 또한 각자의 언어, 즉 ‘건축적 알파벳’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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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태생인 당신은 밀라노 공과대학(Politecnico di Milano)에서 공부하고,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디자인 기업들과 꾸준히 협업해왔죠. 이러한 경험은 당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 특히 밀라노는 장인 정신과 높은 품질을 실현할 수 있는 생산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어요. 오랫동안 수많은 예술가와 기술자가 위대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생태계를 형성해왔기 때문이죠. 저도 대학 시절 여러 디자인 스튜디오와 공장, 장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과 함께 일했어요. 교수들도 늘 학교 밖으로 나가도록 격려했고요. 이탈리아의 디자인 브랜드는 모두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인격체 같아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저마다 고유한 기술, 공정, 태도, 정신, 취향을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 덕분에 여전히 밀라노가 소재, 리서치, 디자인, 패션, 사진, 그래픽, 음식까지 모든 분야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코 제가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탈리아 건축가와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을 꼽는다면요?
피에로 포르탈루피 Piero Portaluppi와 주세페 테라니 Giuseppe Terragni부터 마르코 자누소 Marco Zanuso, 아킬레 & 리비오 & 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 Achille & Livio & Pier Giacomo Castiglioni, 비코 마지스트레티 Vico Magistretti, 안나 카스텔리 페리에리 Anna Castelli Ferrieri를 거쳐, 에토레 소트사스 Ettore Sottsass, 알도 로시 Aldo Rossi, 렌초 피아노 Renzo Piano까지 셀 수 없이 많죠.
©Miyeon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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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비코 마지스트레티는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 Royal College of Art 교수직을 맡은 뒤, 영국 문화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디자인 세계에 차용했죠. 당신도 세계적 프로젝트를 맡으며 받은 영향을 작업에 반영하나요?
물론이죠. 저는 온전히 순수한 것보다 살짝 오염된 걸 좋아해요. 제 디자인은 중국, 일본, 아프리카, 인도, 밀라노, 뉴욕 등 수많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조금씩 그곳의 문화에 물들어가죠. 사실 유러피언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문화적 교류를 경험해요. 지금 밀라노 오피스에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만 해도 60% 이상이 이탈리아 태생이 아닌걸요.
일하고, 쉬고, 영감받기 위해 방문하는 도시는 어디인가요?
대화하면서 느꼈겠지만 저는 꽤나 워커홀릭이라서요. 전 세계 어디에서든 유연하게 일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출장 중에도 미술관을 방문하고 현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시간을 내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는 무려 4개 도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중국 출장을 갈 때면 한시도 쉬지 않고 일만 하고 있어요.(웃음) 휴양하는 곳은 매번 달라요. 밀라노 주변으로는 산타마리아 산맥 Santa Maria Mountains에 있기도 하고, 포르테 데이 마르미 Forte dei Marmi 바닷가로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시를 딱 하나만 고른다면 베니스를 좋아해요. 이탈로 칼비노 Italo Calvino의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 Le Città Invisibili> 속 온통 물로 이루어진 도시가 꼭 베니스 같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적으로 아름답고, 밀라노와 가까워 일하기에도 제법 편리하고, 걸어다니기 좋은 도시죠. 베니스의 생활 리듬이 저와 잘 맞아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을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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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FAUTEUIL GRAND CONFORT 표지

Issue.04 FAUTEUIL GRAND CONFORT

1928년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포퇴유 그랑 콩포르의 위대함은 단순히 ‘편안함’에 있지 않습니다. ‘의자는 앉기 위한 기계’라는 새로운 개념과 당시로선 최신 소재였던 강관을 사용한 혁신적 이미지로 근대를 함축하는 아이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르코르뷔지에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수직·수평 요소와 모듈러 개념, 필로티 구조 등을 차용한 형태는 의자를 건축이라고 한 르코르뷔지에의 말을 상기시킵니다. 즉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기계처럼 순수한 형태, 단순한 구조 체계에서 비롯한 규율과 질서, 그리고 이들 간의 상호 연관성이 한데 어우러져 풍성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위대한 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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