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말하는 르코르뷔지에
에디터 유다미 | 포토그래퍼 전미연
르코르뷔지에에게 건축적 사고와 도시를 읽는 지혜를 배운 마리오 보타는 의자를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시대를 담아내는 문화적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돕는 기능적 사물’이자 건축의 일부로 정의한다. 1980년대 알리아스와 협업해 자신의 건축적 텍토닉을 반영한 의자 시리즈를 선보인 그는 사물의 본질을 강조하고 건축적 언어를 드러냈다.
이 인터뷰는 매거진C 4호 ‘포퇴유 그랑 콩포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활동하던 초기, 르코르뷔지에와 함께하며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당시 르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서 일한 경험을 회고해주실 수 있나요?
1965년이었습니다. 저는 베네치아 건축 대학을 다니던 1학년 학생이었죠. 당시 르코르뷔지에가 새로운 병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베니스에 방문했습니다. 협업자들과 함께 프로젝트 모델과 의미를 설명하러 온 것이었는데, 당시 저는 학교에 다니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어요. 차라리 르코르뷔지에를 따라 실무를 경험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그의 스튜디오에 지원했습니다.
1965년이면 그가 세상을 떠난 해군요. 당시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맞아요. 이 병원 프로젝트가 르코르뷔지에의 마지막 프로젝트 중 하나였죠. 저는 주로 스케치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명 같은 작업이었다고 할까요. 마치 특별한 미션을 전달받은 느낌이었죠. 특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는 베니스라는 도시 자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제가 경험한 작업 중 가장 강렬하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건축가로서 일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병원 프로젝트는 긴 설계 과정 끝에 결국 실현하지 못했지만, 진행하는 단계에서 르코르뷔지에로부터 많은 지혜를 얻었습니다. 거의 60년 전의 일이지만, 저는 여전히 그 프로젝트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에서 깊은 영향을 주었죠. 그래서인지 르코르뷔지에의 작업 중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특히 애착을 느낍니다. 그는 삶의 근본적 문제, 이를테면 사회적 이슈나 도시 전략, 대량 건설 같은 주제를 아주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다루었어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르코르뷔지에에게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었고, 그 접근이 실제 결과로 구현됐을 때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예컨대 병원이란 건축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기계 같다며 그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건축가들이여 조심하세요. 질병과 환자의 문제는 단지 기능적이거나 기술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해답은 이미 도시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 즉 베니스라는 도시, 운하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것이죠. 그는 이렇게 도시를 읽고 이해하는 법을 가르쳤고, 이것이 바로 제가 르코르뷔지에에게서 얻은 가장 큰 지혜입니다.
르코르뷔지에의 인간적 면모도 궁금합니다.
엄격하기로 유명했죠. 실제로 매우 직설적으로 이야기했고, 아무에게도 틈을 주지 않는 편이였어요. 타협이 없는, 굉장히 완고한 인물이었습니다. 저 역시 긴 대화를 나누진 못했고요.
이번 호에서는 르코르뷔지에, 잔느레, 페리앙의 포퇴유 그랑 콩포르를 다루며 의자와 건축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포퇴유 그랑 콩포르를 건축적인 의자라고 생각하나요?
르코르뷔지에는 “의자란 작은 건축”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몸과 밀접하고, 생활 속 움직임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포퇴유 그랑 콩포르 역시 세밀하게 다듬은 건축물로, 당시로서는 특별한 소재와 디자인을 차용해 하나의 상징물처럼 완성했습니다. 휴식과 편안함을 위해 설계한 제품이기에 확실히 단순한 의자는 아니에요. 몸을 자연스럽게 감싸는 형태가 무게를 균형 있게 분산해주니까요. 때로는 잠을 잘 때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고요. 이처럼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다양한 활용 방식이 바로 그 특별함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 디자인이 앉는 개념을 새롭게 바꿨다고 생각해요. 시대의 문화로 남는 의자를 만들었죠.
“의자는 작은 건축”이라는 표현에 동의하나요?
모든 의자는 보통 테이블, 주방, 거실 등 공간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의자란 사람이 앉아서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사물이죠. 그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본질적 기능인 셈입니다. 그러니 의자는 건축의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또한 건축처럼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죠.
이제 당신의 의자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알리아스와 함께 1982년부터 의자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간결한 선과 기하학적 구조는 당신의 건축에도 등장하는 시그너처 스타일이자 디자인 철학을 드러내는 요소죠.
프리마 Prima와 세콘다 Seconda의 경우 매우 단순한 아이디어에 출발했습니다. 의자의 본질만 오롯이 담은 아이코닉한 의자를 디자인해보기로 했죠. 최소한의 구조로 몸을 지탱하는 디자인을 떠올리며 오직 앉는 좌석과 기대는 등받이에만 집중해 설계했습니다. 나머지는 무의미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 얇은 강관을 접어 만드는 방식으로 기하학적 형태를 완성했고요. 제 의자가 지닌 기하학적 요소들은 스케치 과정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저는 항상 연필로 스케치를 하며 작업하는데 점에서 출발해 선이 되고, 그 선은 지지 구조가 되죠.
프리마부터 세콘다, 콰르타 Quarta, 킨타 Quinta, 라톤다 Latonda까지, 당신의 의자 디자인은 일련의 시리즈처럼 전개됩니다. 특히 콰르타는 매우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축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아요. 당신의 대표 건축 프로젝트인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연상되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그렇죠. 프리마와 세콘다가 의자의 본질에 집중한 디자인이라면, 콰르타는 그와 정반대로 접근했습니다. 간결한 선으로 최소한의 구조만 추구한 프리마와 달리 반복되는 선으로 면을 형성해 완성했죠. 실제로 약 200m에 달하는 파이프를 구부려 만든 콰르타는 복잡한 구조와 상당한 무게, 풍성한 볼륨감을 자랑합니다. 프리마와 세콘다를 디자인하며 천착한 ‘최소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인 셈이죠. 프리마와 세콘다가 뼈대만 남긴 의자라면, 콰르타는 마치 옷을 입은 의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콰르타를 가장 좋아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고집하던 것과 정반대의 것에 이끌릴 때도 있으니까요.(웃음)
1980년대는 멤피스 그룹이 디자인 신을 주도하던 시기입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경향인 것 같은데요.
맞아요. 멤피스는 항상 흥분 상태였죠. 저는 이른바 ‘안티멤피스 Anti-Memphis’였습니다(웃음). 물론 멤피스 멤버들과 친구였고, 에토레 소트사스와도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들과 달리 사물의 원형과 시적인 단순함에 집중했어요. 멤피스는 다채롭고 격양된 디자인을 추구한 반면, 저는 앉는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 몸을 지탱하는 구조의 기하학적 형태와 가장 단순한 컬러인 흑백을 선호했죠.
한국에서 진행한 남양성모성지 프로젝트도 매우 의미 있는 건축입니다. 이 공간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벤치와 의자도 인상적이었고요. 맥락을 중요시하는 당신의 아이디어처럼, 공간과 의자가 한 맥락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가 연결되는지 설명해주세요.
남양성모성지 프로젝트는 10년 넘게 진행한, 개인적으로 매우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종교 건축에 놓는 의자는 직장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의자와 성격이 많이 달라요.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내야 하는 것은 물론, 예배당의 오랜 역사와 현대적 의미를 동시에 담아내야 하죠. 사람들은 예배당에서 잠시 앉아 기도를 드리고 떠나지만, 저는 이곳의 의자가 단순히 앉기 위한 사물이 아니라, 기억과 사유를 품은 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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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UTEUIL GRAND CONFORT
1928년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포퇴유 그랑 콩포르의 위대함은 단순히 ‘편안함’에 있지 않습니다. ‘의자는 앉기 위한 기계’라는 새로운 개념과 당시로선 최신 소재였던 강관을 사용한 혁신적 이미지로 근대를 함축하는 아이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르코르뷔지에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수직·수평 요소와 모듈러 개념, 필로티 구조 등을 차용한 형태는 의자를 건축이라고 한 르코르뷔지에의 말을 상기시킵니다. 즉 포퇴유 그랑 콩포르는 기계처럼 순수한 형태, 단순한 구조 체계에서 비롯한 규율과 질서, 그리고 이들 간의 상호 연관성이 한데 어우러져 풍성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위대한 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