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와 패션 사이, 그 미묘한 상관관계

에디터 김선진 | 포토그래퍼 전미연


다양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트렌드 마케팅을 맡아온 REC 트렌즈 마케팅 에이전시의 오너이자 컨설턴트 파스칼 몽포르는 패션이 옷을 통해 시대정신을 일상으로 확산시켜왔듯, 가구 역시 같은 흐름 속에서 공간과 삶의 태도를 형성해왔다고 본다. 그에게 토고 소파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동시에 오늘날까지 패셔너블한 가구로 남아 있는 아이콘으로, 타임리스함과 트렌드가 교차하는 문화적 지표이자,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이 분출하던 1960~1970년대의 디자인 환경을 상징하는 존재다.

이 인터뷰는 매거진C 8호 ‘토고’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패션 마케팅 컨설턴트로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해왔나요?
라코스테, A.P.C. 같은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에스티 로더 그룹의 뷰티 케어, 아디다스 등 스포츠 분야의 글로벌 브랜드들과 함께해왔습니다. 소비자 인사이트를 중심으로 정성적 리서치를 진행하고, 전문가 간 대화를 연결해 브랜드가 좀 더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정량적 데이터보다 감각적인 방향성과 해석을 바탕으로 솔루션을 제안하는 작업에 가깝죠.
컨설팅 에이전시를 운영하면서 이곳 파리 4구의 빈티지 숍 안에 위치한 패션북 서가도 큐레이션하고 있습니다. 이 서가는 소셜 미디어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어떤 프로젝트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에페메라 Ephemera는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아우르는 프로젝트입니다. 파리 9구에서 팝업 북숍으로 시작해, 현재는 어펜딕스 Appendix 편집숍 안에 서가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체 컬렉션의 약 90%는 빈티지 자료로, 책과 잡지, 카탈로그 등 대부분 제 개인 소장품이에요. 패션 브랜드 카사블랑카 Casablanca와는 패션위크 기간에 북클럽을 진행했고, 대형 서적과 매거진을 활용한 설치 프로젝트도 준비 중입니다. 또한 2025년에는 국제 패션북 어워드(International Fashion Book Awards)를 처음 개최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계획입니다.
패션 서적을 모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지 궁금합니다. 수집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10대 시절부터 패션 잡지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해왔어요. 작은 도시에서 자란 저에게 패션 잡지는 쉽게 닿을 수 없던 세계와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죠. 처음에는 <트래셔> 같은 스케이트보드 잡지를 보다가, 이후 <i-D>, <보그>, <데이즈드> 등 패션 잡지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갔습니다. 패션 업계에서 일하면서는 파티 초대장이나 룩북처럼 패션에 관련된 어떤 문서든 모으기 시작했고, 그렇게 25년 넘게 수집해왔죠. 지금은 패션의 역사가 담긴 정말 의미 있는 컬렉션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아카이브는 패션을 넘어 디자인, 예술, 건축으로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폴 푸아레 Paul Poiret는 오트 쿠튀르 역사에서 초기 디자이너 중 한 명인데, 그는 패션 디자이너가 옷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요소를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 최초의 인물이에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퍼포먼스를 만들었고, 무대장치와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까지 확장했죠. 가구 디자인에 특화된 장식 예술 아틀리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패션을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Miyeon Jeon
©Miyeon Jeon
패션과 가구 디자인의 관계를 어떻게 보나요?
저는 패션 디자이너의 시선을 통해 가구 디자인의 세계를 발견했어요. 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가와쿠보 레이·릭 오언스 Rick Owens·라프 시몬스 Raf Simons는 가구를 직접 제작했고, 장 폴 고티에·질 샌더처럼 가구 디자이너나 브랜드와 협력한 사례도 있죠. 이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가구를 만드는 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 하나를 제작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감각과 지식을 요구한다는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의자 역시 단순히 의자가 아니라 하나의 리서치이자 태도이며, 브랜드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매개라는 사실도요. 예를 들면 가와쿠보 레이는 매장과 쇼룸을 위해 처음으로 의자와 가구를 디자인했는데,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가 그렇듯 매장 안에 놓이는 가구 역시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 의자들은 결코 편하지 않았지만, 창의적인 사람은 늘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잠시 머물렀다 다시 이동하게 만드는 형태를 택한 겁니다. 그 자신도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요. 이런 사례가 보여주듯, 이들은 어떤 디자인이든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떤 가구를 두고 “패셔너블하다”라고 말할 때 단순히 예쁘다는 의미만은 아닌 거죠.
그보다는 수많은 메시지와 역사, 그리고 특정한 시대적 맥락을 담고 있다고 봐야죠. 가구와 패션은 모두 기능과 역사적 배경, 시적 요소까지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는 가격이나 사회적 지위, 상징성에 앞서는 보다 본질적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패션 스타일로 한 시대를 정의하기도 합니다. 이는 패션이 유행을 선도하는 분야이기 때문일텐데요, 당신은 타임리스한 디자인과 트렌디한 디자인을 어떻게 비교하나요?
두 분야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과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구 디자이너는 패션 디자이너에 비해 훨씬 오랜 시간 유효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죠. 반면 패션은 늘 시간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패션 디자이너가 가구 디자이너를 은근히 부러워한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웃음) 예를 들어 토고처럼, 어떤 가구는 특정 순간에 매우 패셔너블한 존재로 등장하면서도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합니다. 반면 패션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받죠. 그래서 가구 디자이너가 시간을 초월하는 작품을 만들어낼 때,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들을 얼마나 존중하는지가 드러납니다.
토고만의 아이코닉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토고는 정말 흥미로운 존재예요. 오늘날에는 클래식으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매우 기이하고 엉뚱한 가구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전통적 디자인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형태 자체가 비정형적이고, 분명 소파인데 지나치게 낮아 일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비관습적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괴짜 같은 성격이 토고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하면서도 비관습적인 존재가 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기존 문법과 규칙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에만 이를 비틀 수 있고, 자유로운 창의성은 엄격하고 정교한 기반 위에서 가능하기에, 토고는 바로 그 긴장과 균형을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라고 봅니다.
©Miyeon Jeon
©Miyeon Jeon
토고가 만들어지던 1960~1970년대에는 폴리우레탄 폼 같은 새로운 소재가 상용화되며 볼륨감 있고 아방가르드한 가구 디자인이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 패션 디자인의 흐름은 어땠나요?
가구 업계에서 폴리우레탄 폼을 사용해 거대하고 푹신푹신한 소파를 만들기 시작했다면, 패션계에서는 나일론 같은 소재를 수백만 톤 단위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결정적 변화였습니다. 말 그대로 합성 소재의 시대였죠. 플라스틱과 금속 같은 비전통적 소재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입생로랑을 중심으로 프레타포르테 pret-a-porter, 즉 기성복의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조차 “오트 쿠튀르는 끝났다”고 말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앙드레 쿠레주 André Courrèges, 피에르 가르뎅, 파코 라반 같은 새로운 세대의 쿠튀리에 couturier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오트 쿠튀르가 죽었다면, 그것은 미래의 패션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들을 아방가르드이자 미래주의자라고 부르는 거죠. 무엇보다 이 시기는 청년 문화가 처음으로 중심에 등장한 시대였습니다. 기성세대의 패션과 새로운 세대의 패션 사이에 분명한 단절이 생겼죠. 미니스커트, 와이드 플레어 팬츠와 플랫폼 부츠처럼 괴짜성과 과장된 표현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스타일들이 등장했어요.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패션과 음악, 예술, 사회적 혁명 사이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단순히 전통적 오트 쿠튀르나 기존 규범이 아니라, 문화 전반과의 연결이 핵심이 되기 시작한 거죠. 트렌드 역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를 벗어나 젊은 세대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구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소재와 생산 방식의 등장은 가구를 특정 계층의 전유물에서 해방시키며,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형태를 가능하게 했죠.
1960~1970년대가 패션계의 ‘벨 에포크’라고 불린 이유가 있군요.
미국 히피 문화와 영국의 스윙잉 런던 Swinging London 등 다양한 흐름이 한데 어우러진, 말 그대로 창의성이 폭발하던 시대였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디자인이 더 이상 엘리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죠. 프레타포르테의 등장이 이를 상징하듯, 가구 디자인 역시 대중적 유통 구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슈퍼마켓 같은 공간에서도 굉장히 재미있고, 품질이 좋으면서도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가구를 만날 수 있었어요. 저는 토고가 바로 그 흐름 속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와 순간을 정확하게 대변하는 가구라고 볼 수 있죠.
토고를 패션에 비유한다면 어떤 아이템이 떠오르나요?
케이웨이 K-Way의 윈드브레이커가 떠오릅니다. 가볍고 기능적이면서 컬러도 다양하고, 그 자체로 컬트적인 존재라는 점에서요. 부모 세대에게는 익숙한 아이템이지만, 지금은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쿨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는 점도 토고와 닮았습니다. 휴가 때나 학교에서 입던 재킷처럼, 토고 역시 유쾌함을 지닌 가구이기에 자유롭고 가벼운 기억과 연결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몸을 편하게 맡길 수 있고, 어떤 자세로 앉아도 자연스럽죠. 아이들이 보자마자 바로 뛰어오르는 가구이기도 하고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토고는 특정한 계층이나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상의 아이템과 닮아 있다고 느낍니다.
토고 디자인의 컴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토고는 1970년대에 등장한 이후로 계속 생산되며 20세기 디자인을 대표하는 소파로 자리매김했지만, 다른 한편 틱톡이 유행하며 전혀 다른 맥락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주목받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토고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나요?
디자인 역사 속에서 몇몇 아이콘적 작품이 다시 선택되고, 소비되는 흐름이라고 봅니다. 워낙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만큼, 최근에는 디자인을 둘러싼 일종의 스노비즘 snobbism도 생겨난 듯하고요. 패션 업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현상이죠. 다만 틱톡 세대가 이를 하나의 ‘시대’로 묶어 이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970년대 패션과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재조명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은 토고나 멤피스처럼 개별적 오브제로 분절해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죠. 멤피스 스타일 역시 그 배경이나 운동의 맥락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은 채 소비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틱톡에서 화제가 되는 가구들이 결국 모두 타임리스한 작품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원래부터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인데, 어떤 계기로 다시 주목받았을 뿐이죠. 일시적으로는 트렌디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마이크로 트렌드가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좋은 가구로 남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열기가 한번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는 편이에요.
틱톡, 인스타그램에서 주목받는 것 자체가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할 때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자 조건이 된 듯합니다. 오늘날 트렌드의 홍수 속 패션과 가구 디자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이런 기준이 디자인의 출발점이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레스토랑이나 샌드위치 바를 보면, 맛보다 인스타그램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정작 본질은 부족한 경우도 많고요. 가구 디자인에서는 특히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티셔츠라면 마이크로트렌드의 일부가 되는 것도 가능하겠죠. “지난주에 2000장이 팔렸지만 금세 사라졌다”는 말도 자연스러울 수 있고요. 하지만 가구, 특히 의자는 티셔츠가 아닙니다. 시간과 사용을 견뎌야 하는 대상인 만큼 트렌드 이상의 기준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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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TOGO 표지

Issue.08 TOGO

1973년 미셸 뒤카로이가 디자인한 토고는 전통적 소파의 규범을 벗어난 형태입니다. 특유의 주름진 표면과 바닥에 직접 닿는 낮은 좌면, 올폼 구조의 내부는 당대 소파의 디자인 관습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혁신성을 제시합니다. 1960‐1970년대 사회·문화적 변화를 갈망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며 ‘시대 정신’을 반영했던 토고의 매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팬데믹 시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조명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토고는 단순한 가구를 넘어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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