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톤과 알토의 희귀 디자인으로 가득한 베를린 아파트

에디터 유다미 | 포토그래퍼 전미연

미르쿠 쿨베리 Mirkku Kullberg와 올라 콜레흐마이넨 Ola Kolehmainen은 20년 넘게 베를린에 살고 있다. 미르쿠는 알바 알토 Alvar Aalto 재단을 비롯해 아르텍, 비트라 등 다양한 디자인 기관과 브랜드를 거쳐 현재 스웨덴 러그 브랜드 카스트할 Kasthall CEO로 일하고 있다. 올라는 현대건축과 종교 건축물을 촬영하며 공간과 빛을 탐구하는 예술가다. 두 사람의 집에는 오랜 시간 가까이해온 디자인과 예술이 켜켜이 쌓여 있다. 희귀한 디자인 아이콘과 작품, 수많은 책이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다. 두 사람을 처음 만나게 한 것도 건축이었다. 올라가 핀란드의 알토 건축물을 촬영하기 위해 재단에 연락하면서, 당시 알바 알토 재단에서 일하던 미르쿠와 처음 만났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교회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알토가 맺어준 커플인 셈이다. 이후 올라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 커플은 유럽 여러 도시로 이동하기 편리한 베를린을 거점 삼아 두 번째 집을 마련하게 됐다.

이 인터뷰는 9호 '팬톤 체어'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집 안 곳곳에 놓인 가구와 오브제, 작품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아르텍 가구를 비롯해 팬톤의 의자와 소파, 조명, 벽면 조각 등도 볼 수 있고요.
MK 정말이지 이야기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래야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있죠.(웃음) 대부분 창작자의 정신, 다시 말해 자신만의 생각과 고집이 강하게 담긴 물건들이에요. 특히 팬톤의 작업이 그렇죠.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고, 새로운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꾸준히 기술적 가능성에 도전했어요. 그는 단순히 하나의 오브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공간과 그 안의 분위기까지 함께 디자인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디에 놓이든 그 시대의 정신과 공기를 함께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집 전체를 팬톤으로 채울 순 없어요.(웃음) 너무 과하죠.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 시대의 정신과 디자이너의 철학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팬톤은 정말 훌륭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핀란드인으로서 알바 알토를 더 잘 알지만, 국경을 넘어 팬톤의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죠. OK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엘즈워스 켈리 Ellsworth Kelly의 작품도 집에 걸려 있어요. 색과 형태를 강조한 추상 표현으로 조화와 긴장감을 다루는 방식에서 팬톤과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시대도 분야도 다르지만, 자신만의 언어로 공간과 감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작품이 이 집에 함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르쿠 쿨베리 Mirkku Kullber(왼쪽)와 올라 콜레흐마이넨 Ola Kolehmainen
미르쿠 쿨베리 Mirkku Kullber(왼쪽)와 올라 콜레흐마이넨 Ola Kolehmainen
서재에 놓인 아르텍 가구들은 미르쿠의 커리어를 가늠하게 한다.
서재에 놓인 아르텍 가구들은 미르쿠의 커리어를 가늠하게 한다.


팬톤을 비롯해 알바 알토, 핏 헤인 에이크 Piet Hein Eek, 플로런스 놀 Florence Knoll, 엘즈워스 켈리, 로런스 위너 Lawrence Weiner, 알렉산더 콜더 Alexander Calder까지 다양한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작품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와 분야의 작품, 가구가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MK 인테리어와 전체적인 분위기는 저의 아이디어가 반영됐어요. 핀란드 집은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에 가까워요. 알토의 자작나무 가구를 중심으로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이죠.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다르게 연출하고 싶었어요. 이 도시의 분위기도 반영하려 했고요. 저는 엄격하게 전통이나 특정 스타일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어서 상반된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조화를 늘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만약 이곳까지 핀란드 집처럼 꾸몄다면 너무 지루했을 거예요. OK 저는 어떤 작품이든 메시지가 분명한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작품부터 강렬한 색채, 과감한 곡선까지 완전히 다른 작품을 한 공간에 놓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죠. 예를 들어 거실에 놓인 팬톤의 클로버리프 소파 Cloverleaf Sofa는 크기와 형태, 컬러 모두 존재감이 매우 강한 작품이에요. 그 옆에 #피트 하인 에이크의 흰색 테이블을 배치하는 거죠. 두 작품의 비례는 비슷하지만 하나는 강렬한 색채와 유기적 곡선을 지녔고, 다른 하나는 거친 질감과 절제된 무채색을 띱니다. 상반된 성격임에도 함께 놓였을 때 공간 안에서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루죠.
말씀하신 클로버리프 소파는 아주 희귀한 작품인데요, 어떻게 이 집에 들어오게 되었나요?
MK 비트라 덕분이죠.(웃음) 비트라에서는 제품으로 출시되지 않는 다양한 실험적 프로젝트도 진행합니다. 새로운 색이나 형태를 적용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옥션을 활용해 판매하기도 하죠. 이 소파도 그렇게 만든 샘플 가운데 하나예요. 크기도 워낙 크고, 색 역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컬러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정말 좋은 가격에 구입할 기회가 생겼는데 놓칠 수는 없었죠. 집에 들이기에는 너무 커서 걱정도 했지만, 그렇다고 창고에 넣어 두기에는 아까웠어요. 결국 이곳에 자리하게 됐네요. OK 미르쿠가 처음 이 소파를 가져오겠다고 했을 때는 반대했어요. 이미 집에도, 제 작업실 창고에도, 커다란 소파가 있었거든요. (웃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고민이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강렬한 색과 형태는 물론이고, 여러 사람이 함께 앉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죠. 이 소파가 있는 거실이 제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예요.
거실과 화장실에 놓인 팬톤 체어의 컬러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짙은 청록색 계열의 페트롤 컬러는 흔히 보기 어려워요.
MK 페트롤과 오렌지색 모두 글라스파이버로 제작한 초기 모델이에요. 저는 묵직한 질감과 은은한 광택이 만들어내는 존재감 때문에 파이버글라스 모델을 더 좋아해요. 두 의자 모두 베를린의 빈티지 숍에서 발견했는데, 특히 페트롤 색상을 찾았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톰 틱슨이 아르텍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던 시절, 팬톤 체어와 같은 컬러로 스툴 60과 탱크를 칠해 선보였다.
톰 틱슨이 아르텍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던 시절, 팬톤 체어와 같은 컬러로 스툴 60과 탱크를 칠해 선보였다.
핀란드 리빙 브랜드 이탈라와 아바리아 핀란드 제품을 놓아둔 테이블
핀란드 리빙 브랜드 이탈라와 아바리아 핀란드 제품을 놓아둔 테이블
오랜지색 펜톤 체어와 함께 매치한 스툴60도 눈에 띄는데요, 특별한 에디션인가요?
제가 아르텍 매니징 디렉터로 막 부임했을 때였어요.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톰 딕슨 Tom Dixon이 아르텍의 가구에 새로운 색을 입혀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스툴 60과 901을 비롯해 같은 컬러의 팬톤 체어까지 함께 전시했죠. 그런데 제가 아르텍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겨우 9일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이 프로젝트가 공개됐고, 알토와 함께 살아온 핀란드 사람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거셌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를 알토의 유산을 훼손한 시도로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저는 알토라면 오히려 이런 시도를 반겼을 거라고 생각했죠.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끊임없이 실험했던 사람이니까요. 물론 당시 분위기는 상당히 심각했고, 결국 그 컬러들은 정식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했어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전시한 컬러의 가구들은 모두 창고로 들어갔죠. 이후 창고를 정리하면서 이 가구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저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모두 구입했죠. 아쉽게도 티 트롤리 901만큼은 결국 찾지 못했지만요.(웃음) 돌이켜보면 그때 어떤 비판을 받았는지보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였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험 역시 배우는 과정이자 하나의 여정이니까요.
두 분은 책이 가득한 서재를 휴식 공간이라고 소개했는데, 일상에서 책은 어떤 영향을 주나요?
OK 저는 건축물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건축 관련 사진집이나 구독 중인 잡지, 예술 서적부터 제 작업 카탈로그와 제 사진이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문판까지 책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가 없죠. 작업을 위한 중요한 연구 자료이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따로 사용하던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작업실을 집으로 옮기기로 한 것도 책 때문이었어요.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책이 가까이 있으니, 오히려 작업하기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죠. 지금은 베를린 집에서 일상과 작업을 함께하기 때문에 이 서재를 채우고 있는 책도 대부분 제 책이에요. MK 책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늘 새로운 책만 읽는 것도 아니에요. 한번 본 책이라도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악셀 문테 Axel Munthe의 <산 미켈레 이야기 The Story of San Michele>가 대표적이죠. 열여덟 살 때부터 정말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책, 잡지, 카탈로그를 가리지 않고 인쇄물에 애착이 많아요. 책을 수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핀란드 집에는 제가 모은 책으로 가득한 서재가 있죠. 저희 둘 다 책에 둘러싸여 있어야 안정감을 느껴요.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집인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도 책이 있는 곳을 가장 먼저 찾거든요.
올라의 작업 공간. 벽에는 희귀한 베르너 팬톤의 슈피겔 램프 모델이 걸려 있다.
올라의 작업 공간. 벽에는 희귀한 베르너 팬톤의 슈피겔 램프 모델이 걸려 있다.
책과 관련된 사진 작업도 한 적이 있나요?
OK 아직은 없지만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하나 있어요. 악셀 문테의 <산 미켈레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카프리섬의 빌라 산 미켈레를 직접 방문했을 때였어요. 빌라 산 미켈레 외에도 여러 개인 빌라가 있는데, 그중 한 곳에 들어갔다가 책으로 가득한 방을 발견했어요. 오래된 종이책을 쌓아 올려 벽처럼 만든 공간이었는데, 책의 무게 때문에 약간 기울어져 있더라고요. 그 평화로운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언젠가는 꼭 그 공간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죠. 여행할 때도 그렇고 집에 있을 때도 그렇고, 돌이켜보면 책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네요.
건축물을 기록하는 것과 작품의 소재로 접근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일 것 같아요.
OK 처음에는 현대 건축물에 집중했어요. 실내에서 빛이 흩어지는 모습과 구조를 촬영하고, 이를 다시 재구성하며 건축물 안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죠. 그러던 중 2013년 이스탄불의 유적지 하기아 소피아 Hagia Sophia 촬영이 작업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어요. 하루 중 서로 다른 시간대에 같은 공간을 촬영한 뒤, 그 이미지를 조합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죠. 그때부터 현대 건축에 머물지 않고, 시간을 거슬러 여러 시대의 건축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건축물의 역사와 공간 구조를 따라가며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을 발견하고, 이를 하나의 이미지이자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죠.
두 분의 여정 자체가 디자인과 건축, 예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MK 저는 요즘 알바 알토의 건축으로 잘 알려진 파이미오 재단의 이사를 겸하고 있어요. 아르텍에서 일했던 시간은 제게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디자인과 건축, 예술을 비롯한 거의 모든 문화적 영역이 우리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 안에서 창작자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죠. 결국 그것이 서로 다른 사람과 시대, 사회를 연결하는 힘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여러 직책을 맡아 일해온 과정 또한 긴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젊은 나이에 너무 큰 신발을 신어버린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 실패한 경험과 성공한 결정까지 모두 여행을 이루는 하나의 챕터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요즘 지금까지 경험한 일들을 글로 정리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를 연결해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진즉에 나왔어야 했지만, 2027년 출간을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웃음)
장 프루베, 알바 알토의 디자인으로 구성한 미르쿠의 작업 공간
장 프루베, 알바 알토의 디자인으로 구성한 미르쿠의 작업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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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Panton Chair 표지

Issue.09 Panton Chair

팬톤 체어는 등받이와 좌판, 다리, 받침대가 이음매 없이 하나의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1967년 당시의 혁신적 디자인과 기술력이 결합해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소재가 열어준 조형적 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이 의자는 1960년대의 대담한 실험 정신과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를 상징하며, 오늘날까지 20세기 디자인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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