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와인드 쇼룸에서 진행한 라이켄의 디자인 토크 ©unwind.kr

잠들어 있던 디자인, 가리모쿠 'ZE 소파'를 깨우다

에디터 김선진 | 사진 제공 언와인드, 라이켄


지난 9월 3일, 일본 가리모쿠가구의 신규 브랜드 ‘가리모쿠 리:이슈 바이 라이켄 Karimoku Re:issue by LICHEN’이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서래마을 언와인드 쇼룸에서 열린 론칭 행사에서는 브랜드의 첫 번째 제품인 ‘ZE 소파’를 공개하고,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라이켄 LICHEN의 디자인 토크를 진행했다.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은 소파에 직접 앉아 몸을 기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방식으로 제품을 경험했다.

‘가리모쿠 리:이슈’ 라인은 언와인드가 국내 단독으로 론칭했다. ©unwind.kr
‘가리모쿠 리:이슈’ 라인은 언와인드가 국내 단독으로 론칭했다. ©unwind.kr
언와인드 판교점, 서래마을점에서는 가리모쿠60, 가리모쿠 뉴스탠다드를 비롯해 이번에 새로 공개하는 리:이슈 라인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소개한다. ©carbonstories
언와인드 판교점, 서래마을점에서는 가리모쿠60, 가리모쿠 뉴스탠다드를 비롯해 이번에 새로 공개하는 리:이슈 라인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소개한다. ©carbonstories

'가리모쿠 리:이슈 바이 라이켄'은 수십년 간 쌓아온 가리모쿠가구 아카이브 속 디자인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프로젝트 브랜드다. 뉴욕에서 빈티지 가구점을 운영하며 과거와 현재의 가구가 지닌 관계성에 주목해온 라이켄의 시선을 더해 완성한다. 2025년 도쿄에서 처음 공개했다.

ZE 소파는 푹신한 착석감과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unwind.kr
ZE 소파는 푹신한 착석감과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unwind.kr

브랜드의 첫 제품 'ZE 소파'는 1980년대 회의실용 소파로 제작됐다. 출시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단종된 ZE 소파는 수십 년간 가리모쿠가구 쇼룸의 아카이브에 보관돼 있었다. 이후 일본을 방문한 라이켄이 발견하고 재발매를 적극 제안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게 된 것. 라이켄은 기존 1인용·3인용 모델에 2인용 버전과 오토만을 새롭게 추가했다.

'디자인 인큐베이터'를 지향하는 라이켄 ©Lichen
'디자인 인큐베이터'를 지향하는 라이켄 ©Lichen

라이켄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2017년 에드 비 Ed Be, 자레드 블레이크 Jared Blake가 공동 설립했으며, 브루클린에서 빈티지 가구를 판매하며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쇼룸을 열고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선보이는 한편, 신생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소개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부화시키는 '디자인 인큐베이터'로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ZE 소파의 론칭을 앞두고, 라이켄에게 ZE 소파에 매료된 이유와 가리모쿠와의 협업 과정에 대해 물었다.

일상 속 오래도록 가치 있는 디자인과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엄선해 온 리빙 셀렉트숍 언와인드에서 ZE 소파 컬렉션을 국내 단독으로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언와인드의 제작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둘은 미국의 중고 거래 웹사이트 크레이그리스트에서 처음 만났다고 들었어요. 어떤 스토리인가요?
J 의자 거래를 위해 만났죠. 당시 저는 간간이 임스 체어의 셸과 베이스를 따로 구해 조립한 뒤 되파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짝이 맞지 않는 노란색 임스 의자가 하나 있어서 내놓았는데, 그걸 에드가 사겠다고 한 거죠. 제가 “그 의자로 뭘 하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가구 숍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럼 같이 하자”가 된 거죠. 그전까지 저는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일했고, 에드는 10년 동안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사고방식도 배경도 완전히 정반대였죠.
그 뒤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라이켄을 만들었죠. 어떤 점에서 통한 건가요?
E 보통 중고 거래라면 물건만 받아 오면 끝이잖아요. 그런데 자레드는 계속 대화를 하고 싶어 했어요. 심지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네가 마음에 드는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죠. 그때 사진이 아직도 있어요. (웃음) 원래 같으면 “이 사람 질문이 왜 이렇게 많지? 사진은 또 왜 찍자는 거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네요.
J 그냥 멋있어 보여서 찍은 거죠. 뉴욕 창고 임대료가 꽤 비싸니까 비용을 반씩 나누기로 했고요. 그 뒤로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둘의 첫 만남. 자레드의 임스 체어를 구매하기 위해 나온 에드. ©Jared Blake
둘의 첫 만남. 자레드의 임스 체어를 구매하기 위해 나온 에드. ©Jared Blake
라이켄은 2017년 빈티지 가구 숍으로 시작했죠.
E 숍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였어요. 창고에 물건들을 두고 인스타그램과 크레이그리스트에서 가구를 팔았죠. 매장이 없으니까 제품 사진은 카페든 농구장이든, 공짜인 곳이라면 뉴욕 어디서든 찍었어요. 그로부터 1년쯤 뒤, 월 매출이 600달러 정도 됐을 때 윌리엄스버그에 매장을 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죠.
항상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라이켄 쇼룸 ©Lichen
항상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라이켄 쇼룸 ©Lichen
지금은 직접 가구를 디자인하고, 각종 협업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디자인 인큐베이터’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요.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J 라이켄에서는 여전히 빈티지 가구도, 우리가 만든 새로운 가구도 팝니다. 각종 이벤트와 커뮤니티 활동, 상영회를 통해 새로운 디자이너를 시장에 소개하기도 하고요. 팀원들은 라이켄이라는 이름 아래 각자 캔들을 만들기도 하고,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하고, 각자의 스튜디오와 작업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이런 활동이 일어나는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죠. 아이디어들이 부화할 때까지 흙을 따뜻하게 데워두는 역할이랄까요.
©Lichen
©Lichen
2025년, 새로운 프로젝트 브랜드 ‘가리모쿠 리:이슈 바이 라이켄’을 론칭했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가리모쿠가구와의 협업 과정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J 원래는 ‘CMPT 바이 라이켄’ 라인을 준비 중이었어요. 사용자가 필요에 맞게 형태를 조절하고 쓰임을 변경할 수 있는 제품들을 구상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2022년쯤 라이켄 팀원들이 다 같이 일본의 가리모쿠가구 쇼룸을 방문했어요. 7~8층에 이르는 공간을 돌아보다 ZE 소파를 마주쳤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죠. 이탈리아 소파 같기도 한 형태에,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소파처럼 보였어요. 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도대체 이걸 왜 생산하지 않는 거냐”며 계속 추궁했죠. 소파를 제작하는 기계도 이제는 없고, 그 기법을 다루던 팀도 더 이상 여기서 일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E 우리가 이 소파를 계속 론칭해야 한다고 고집하니, 가리모쿠가구에서 손을 써주셨어요. 이미 회사를 떠난 분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그분들은 기꺼이 돌아와 소파 제작 과정을 직접 감독해주셨죠. 대부분이 이 회사에서 30년, 40년씩 근무한 분들이었는데, 이들을 만나는 게 가장 큰 영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함께 일한 경험이 관계로 이어지고, 이후의 새로운 일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죠.
가리모쿠 쇼룸을 방문한 라이켄 팀 ©Karimoku Furniture
가리모쿠 쇼룸을 방문한 라이켄 팀 ©Karimoku Furniture
가리모쿠가구와 함께 작업한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정중해서 웃음이 날 정도라거나, 디테일에 놀라울 정도로 집착한다거나요. (웃음)
E 저희도 똑같이 느꼈어요. 처음에는 가리모쿠의 역량을 모르고 디자인했는데, “감사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자체 공장과 최첨단 기계들, 오래 근무하며 전통 기법부터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까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뇌 회로를 다시 짜야 할 정도였죠.
ZE 소파는 원래 1980년대 회의실용 소파로 만들어졌죠. 마치 바둑 클럽에 있을 것 같은 형태이기도 해요. 1980년대 디자인을 재출시하며 수정한 부분이 있나요?
J 원래는 1인용과 3인용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2인용 버전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뉴욕의 주거 공간은 서울이나 도쿄와 마찬가지로 정말 좁고 밀집돼 있거든요. 그런 환경에서 데이베드 역할을 하거나 친구가 왔을 때 자고 갈 수 있는 모델을 더하고 싶었죠. 그리고 회의실 가구라는 맥락에서 꺼내오고 싶어서 패브릭 옵션도 추가했습니다. 원래는 가죽으로만 생산됐거든요.
E 내부 디자인도 현대 기술에 맞게 수정했어요. 정말 옵션이 많아서 가리모쿠와 많은 대화를 나눴죠. 폼 종류를 정하는 데만 해도 옵션 안에 또 옵션이 있는 식이었어요. 모든 부분의 디테일에 신경 썼어요.
1982년 카탈로그 속 ZE 소파 ©Karimoku Furniture
1982년 카탈로그 속 ZE 소파 ©Karimoku Furniture
리이슈 라인인 만큼 그런 세세한 과정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디자인을 부활시키는 게 아니라, 정말 라이켄의 시선을 더해 완성하는 프로젝트네요.
J 맞습니다. 또 어떤 부분도 마음대로 결정해버리지 않겠다는 가리모쿠의 태도이기도 해요.
도쿄 가리모쿠 리서치센터 ©Karimoku Furniture
도쿄 가리모쿠 리서치센터 ©Karimoku Furniture
다양한 옵션 중 가장 좋아하는 ZE 소파 버전은 무엇인가요?
E 다음에 출시될 초콜릿 브라운 컬러의 가죽 버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J 체크무늬나 블루 컬러의 레더 같은 커스텀 문의를 제작하는 것도 기대됩니다. 고양이를 키우는데 알칸타라 소재로 만들어줄 수 있냐는 분도 있었죠. 라이켄은 작은 스튜디오인 만큼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에서 힌트를 많이 얻습니다.
© carbonstories
© carbonstories
지금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J 뉴욕에서 작은 디자인 위크를 열어보려 해요. 가능하다면 내년에요. ZE 소파를 소개하기 위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했는데, 도시 전체가 디자인 위크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큰 영감을 받았죠.
E 리테일을 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나 경험에 항상 관심이 가요. 호스피탈리티와 주거 공간은 물론이고 리스닝 룸 같은 문화도 그렇고요. 이런 환경 속에 ZE 소파를 두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라이켄이 가장 좋아하는 의자는 무엇인가요?
E 예전에는 가에타노 페세의 브로드웨이 체어를 가장 좋아했어요. 지금은 다음 프로젝트로 작업 중인 의자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J 라이켄의 목수가 디자인한 의자요. 아주 미국적인 사이즈의 넉넉한 의자죠. 단순한 형태가 좋고, 주문 제작품이라는 점도 이 의자에 애정이 가는 데 한몫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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