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샘솟는 물건들로 가득한 집
에디터 김선진 | 포토그래퍼 김시진
펜싱에서는 상대에게 점수를 내주었을 때 “투셰 Touché”를 외친다. ‘내가 졌다’는 뜻의 구호지만, 동시에 힙합의 샤라웃 shout out 문화처럼 ‘너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임재린은 2021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세이투셰를 시작하며, 사람들로부터 그런 투셰를 듣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이 인터뷰는 매거진C 8호 ‘토고’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휘어진 페르시안 러그, 자개 스툴, 고릴라 모양의 액세서리 거치대처럼 세이투셰의 제품들은 ‘필요해서 산다’는 기준만으로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특유의 기발하고 낯선 지점들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사랑하고, 순수한 만족감으로 찾게 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제 취향을 오롯이 반영했어요. 차가운 스틸이나 블랙보다 팝한 색감과 빈티지한 무드,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다 보니 그런 성향이 세이투셰에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브랜드를 확장하면서 제 스타일만 고집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제 스스로가 만들고 싶은 물건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죠.”
임재린이 만들거나 선택한 모든 물건에는 일관된 ‘코드’가 있다. 녹색 랜드로버와 오토바이, 집 안에 있는 다크 그린 레더의 토고 소파를 비롯해 다양한 식물이 지닌 여러 톤의 그린이 그것이다. 컬러뿐이 아니다. 얇고 긴 등받이가 눈에 띄는 빈티지 체어, 농구공 모양의 빈백, 한 번도 물을 따라 마신 적 없는 컵, 공룡 모양의 화분, 절대 쏠 일 없는 거대한 활까지. 서울에서만 아홉 번의 이사 끝에 정착한 이곳에는 보기만 해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고, 피식 웃음이 나는 각종 물건이 가득하다. 모두 그를 고민 끝에 설득시킨, 즉 임재린이 스스로 투셰를 외친 대상이다.
“일을 계속할수록 가지고 싶은 물건에 대한 기준이 점점 더 구체화돼요. 전형적인 소재를 바꾸거나, 익숙한 비례에 변화를 주는 식의 반전에 이끌리는 편이죠. 예를 들면 토고 역시 소파의 다리를 과감히 없애고, 하나의 소재로 감싼 뒤 폼으로만 꽉 채운 점이 놀랍기도 하고 꽤 마음에 들었어요. 또 패션이나 가구를 막론하고 빈티지 제품을 좋아하는데, 희소성이나 유행을 떠나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집은 브랜드 디렉터로서 제품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도록 하는 최적의 공간이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를 보면서 감자칩을 먹는, 일명 ‘카우치 포테이토 couch potato’에게 완벽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은 감자칩 봉지 모양의 쿠션도 그렇게 탄생했다.
“어느 날 토고에 누워 있다가 감자칩 봉지 이미지와 쿠션의 사이즈, 텍스처가 만족스럽게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초 칩, 젤리, 팝콘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고심 끝에 감자칩과 프레첼을 골랐죠. 토고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여서 소파에 놓을 쿠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브랜드 라인업을 고려해 신제품을 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전략적 생각보다는 이렇게 불쑥 떠오른 생각에서 출발하는 제품이 많아요. 이처럼 익숙한 물건을 용도에 맞지 않게 배치할 때 생겨나는 새로운 재미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임재린의 생각은 로마 신전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다리를 지닌 로만 테이블을 비롯해 TV 사이드 테이블과 플로어 램프 등 가구는 물론, 룸슈즈·벽시계·티슈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전개되는 세이투셰의 제품 전반에서 드러난다. 매일 반려견 빌리와 함께 사무실로 출근하는 그는 곧 출시될 가구를 포함해 여러 신제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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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08 TOGO
1973년 미셸 뒤카로이가 디자인한 토고는 전통적 소파의 규범을 벗어난 형태입니다. 특유의 주름진 표면과 바닥에 직접 닿는 낮은 좌면, 올폼 구조의 내부는 당대 소파의 디자인 관습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혁신성을 제시합니다. 1960‐1970년대 사회·문화적 변화를 갈망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며 ‘시대 정신’을 반영했던 토고의 매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팬데믹 시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조명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토고는 단순한 가구를 넘어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