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의자 디자인을 파헤친 비평가 듀오

에디터 김선진 | 포토그래퍼 케인 헐스


샬럿 & 피터 필은 2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된 70여 권의 디자인 서적을 공동 저술한 세계적인 디자인 이론가이자 비평가다. 이들은 영국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하고, 런던에서 미드센추리 가구 중심으로 한 갤러리를 운영하며 가구를 전문으로 다뤘을 뿐 아니라 그래픽디자인, 패션, 건축, 사진까지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며 지난 35년간 디자인 분야를 분석하고 연구해왔다. 이들의 저서에 루이 고스트는 의자 디자인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구조적 통합’을 성공시킨 사례이자, 플라스틱의 위대함을 재발견하게 한 의자로 등장한다.

이 인터뷰는 매거진C 3호 ‘루이 고스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총 1000개의 의자 이야기를 담은 <1000 Chairs>는 1997년에 출간된 이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만들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런던 킹스 로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때였어요. 어느 날 아트북 출판사 타셴의 설립자인 베네딕트 타셴 Benedikt Taschen이 우리를 찾아와 출판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묻더군요. 얼마 후 우리가 쾰른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당시 구상 중이던 <1000 Chairs>의 시놉시스를 설명했고, 타셴이 그 자리에서 바로 출판을 결정했죠. 이를 기점으로 타셴과 기나긴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1000 Chairs>는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고, 우리가 쓴 모든 책 중에서 압도적으로 성공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벌써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을 정도죠.
책의 첫 출발이 된 아이디어는 무엇인가요?
한 가지 제품 유형에 대해 대대적이고 종합적인 조사를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디자인 컬렉터나 감정가(connoisseur)의 시선에 가까운 접근 방식이었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는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박물관·도서관·제조사·디자인 스튜디오·경매 회사 등을 찾아다니며 의자 1000개에 대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시대와 소재, 디자인 사조를 고려한 순서로 배치하고, 각각의 디자인/생산 연도·디자이너·제조사·소재·치수 등을 정리해 책 한 권으로 압축했죠. 이후로도 우리는 타셴과 함께 <1000 Lights>, <Ultimate Collector Cars>, <Motorcycles> 등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빈티지 시계에 관한 책을 쓰고 있어요.


©Taschen
©Taschen
첫 번째 주제로 의자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자는 ‘앉는’ 기능은 그대로인데도 모양, 색깔, 소재, 기술이 계속해서 변화했기 때문에 디자인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기에 적합했어요.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1000 Chairs>를 넘겨보다 보면 그 형태와 스타일이 끊임없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죠. 의자 하나하나에서 디자이너의 성격이나 문화적 배경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196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부부 건축가 앨리슨 & 피터 스미스슨 Alison & Peter Smithson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의자를 보고 “미스의 의자 안에는 미스의 도시가 담겨 있다(The Miesian city is implicit in the Miesian chair)”라고 말했어요. 의자의 생김새를 보고 그가 사는 세계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니, 참 신기하고 대단하지 않나요? 이는 의자가 추론이나 해석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함축적 사물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매거진 <C> 3호의 주제인 필립 스탁의 루이 고스트는 <1000 Chairs> 589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더군요. 600여 페이지에 걸쳐 탐구한 의자의 연대기 속 루이 고스트는 어떤 맥락과 의미를 지니나요?
처음 매거진 <C> 취재 팀에게서 루이 고스트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아주 흥미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루이 고스트는 우리가 펴낸 다양한 책 속에서뿐 아니라, 2016년 토머스 헤더윅 Thomas Heatherwick 스튜디오에서 강연하며 다룬 의자이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루이 고스트가 ‘구조적 통합(structural unification)’을 실현한 의자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단일 소재로 만든 일체형 의자인 루이 고스트처럼 ‘단일 형태, 단일 구조(single form, single structure)’로 된 사물들을 가리켜 디자인 이론에서는 구조적 통합을 이뤘다고 표현합니다. 일체형 셸을 탑재한 아르네 야콥센 Arne Jacobsen의 시리즈 세븐 체어 Series 7 Chair, 의자 다리를 1개로 통합한 에로 사리넨 Eero Saarinen의 튤립 체어 Tulip Chair도 여기에 해당하죠. 우리는 이러한 사물을 볼 때 본능적으로 만족감을 느낍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뿐 아니라 소재, 에너지, 비용 면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형태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하엘 토네트의 14번 의자 이후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연구와 시도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미적·기술적·상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자들이 탄생했어요. 그만큼 구조적 통합은 의자의 발전을 추동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루이 고스트도 그 성공 사례 중 하나인 것이죠.
당시 혁신적 소재이던 투명 폴리카보네이트를 활용한 루이 고스트의 투명한 디자인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전에도 잔카를로 피레티 Giancarlo Piretti의 플리아 체어 Plia Chair나 구라마타 시로 Shiro Kuramata의 미스 블랑슈 체어 Miss Blanche Chair처럼 투명한 의자가 존재하긴 했지만, 루이 고스트처럼 완전히 투명한 의자는 아니었죠.
투명한 디자인은 목재나 철재 가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벼움과 공간감을 선사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습니다. 이제는 비교적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루이 고스트가 지닌 초월적 매력에 모두가 놀라워했어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 같은 우아함을 지닌 데다, 방을 특별한 분위기로 탈바꿈시키는 보석 같은 의자입니다. 이는 플라스틱을 책임감 있고 지적으로 다뤘기에 탄생한 고귀한 디자인으로, 우리가 여느 플라스틱 의자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아니죠.
루이 고스트 의자를 나무나 강철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완전히 다른 의자가 되었을 겁니다. 바로크양식을 따르는 의자인 만큼 나무를 사용했다면 값싼 앤티크 모조품처럼 보였을 테고, 메탈 소재로 썼다면 몹시 차가운 인상의 의자였을 것 같네요.


©Carlton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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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개 제품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디자인의 발전을 다룬 책 <Plastic Dreams>에서도 루이 고스트가 등장합니다. 플라스틱 의자로서 루이 고스트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루이 고스트는 플라스틱의 ‘재발견(rediscovery)’을 상징합니다. 플라스틱의 발전은 의자의 개념이 예술적으로 변화해온 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가 등장할 때마다 더욱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가구가 등장했습니다. 이를테면 폴리우레탄 폼은 스프링이나 내부 골격 없이도 조각 같은 유기적 형태의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죠. 덕분에 루이 고스트가 출시되기 전에도 훌륭한 플라스틱 의자는 존재했습니다. 일례로, 플라스틱으로 대량 생산한 최초의 의자인 찰스 & 레이 임스 Charles & Ray Eames의 셸 체어 그룹은 아름다운 형태와 합리적 가격으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뒀죠. 베르너 팬톤 Verner Panton은 <1000 Chairs> 개정판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일체형 플라스틱 캔틸레버 의자 팬톤 체어 Panton Chair를 완성하며, 의자의 역사상 매우 중요한 구조적 도전 중 하나를 성공시켰습니다. 요나탄 데 파스 Jonathan De Pas, 도나토 두르비노 Donato D’Urbino, 파올로 로마치 Paolo Lomazzi가 디자인한 블로 Blow 암체어는 의자로서는 다소 무의미하지만 천진난만하고 흥미로운 개념을 등장시키면서 의자의 기능을 더욱 확장시켰어요. 그러나 1960년대 말 모노블록 의자 Monobloc Chair처럼 저렴하고 조잡한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플라스틱 의자의 위상은 빠르게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스틱의 미학적 가능성은 무시하고, 오로지 편리성과 경제성을 극대화하는 제품이 소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고, 1980~1990년대에는 석유 위기까지 겹치며 플라스틱 디자인은 고전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2002년 카르텔과 필립 스탁이 함께 루이 고스트라는 기술적 걸작을 창조한 겁니다. 이때 우리는 플라스틱으로 더 높은 가치 수준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거죠.
모노블록을 가장 민주적인 의자로서 의미 있게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훌륭한 플라스틱 의자와 그렇지 않은 플라스틱 의자를 구분하는 두 분의 기준이 궁금해요.
간단합니다.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죠. 모노블록은 오로지 원가를 줄이는 데만 신경 쓴 의자예요. 재활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품질이 낮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 때문에 거의 일회용 의자처럼 취급되죠. 얼마나 널리 사용되는지와 별개로, 몇 년 쓰고 버려지는 수많은 모노블록 의자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해요. 반면에 루이 고스트는 재활용이 쉽고, 오랫동안 사용해도 위생적이며, 내구성이 뛰어난 고품질의 투명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하죠. 이처럼 수준 높은 플라스틱 의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엔지니어링이 필요합니다. 제품 연구, 프로토타입 제작, 수차례 테스트를 거치는 동안 드는 투자 비용도 엄청나고요. 게다가 루이 고스트는 642파운드(약 114만2500원)로, 플라스틱 의자치고는 꽤 비싼 편이에요. 기계 공정으로 대량 생산하는 플라스틱 의자이니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카르텔이 루이 고스트를 완성하기까지 투자한 비용을 감안하면 이 가격 책정은 매우 타당해요. 훌륭한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완성한 의자를 저렴하게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도 전략적이죠.
카르텔이 ‘플라스틱의 명품화’를 실현했다고 하는 이유인 듯한데요, 여기에는 필립 스탁의 유명세도 큰 영향을 미쳤죠.
물론입니다. 플라스틱 의자를 만드는 데는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제조사는 성공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는 숙련된 디자이너를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플라스틱 의자를 만든 일이 디자이너에게도 대단한 업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카르텔이 필립 스탁과 협업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시 그는 이른바 ‘글로벌 디자이너’ 시대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었고, 연달아 세계적 성공을 거두며 마크 뉴슨 Marc Newson이나 로스 러브그로브 Ross Lovegrove, 재스퍼 모리슨 Jasper Morrison 등 동시대 디자이너보다 훨씬 두드러지는 존재감을 나타냈으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루이 고스트는 국가적 디자인 정체성이 세계적 디자인 정체성으로 확장되던 시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Kane Hulse
©Kane Hulse
그렇다면 두 분은 프랑스인이 디자인하고 이탈리아 제조사가 만든 이 의자를 어느 나라 디자인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나요?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프랑스 왕궁 의자에서 영감 받은 생김새나 디자이너의 국적만 놓고 보면 프랑스 디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루이 고스트는 명백히 이탈리아 디자인입니다. 이탈리아 디자인은 이탈리아인이 만들지 않은 것조차 이탤리언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죠.(웃음) 무엇보다 루이 고스트는 정말 ‘카르텔스러운’ 의자입니다. 카르텔이 만들지 않았다면 이 의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플라스틱 가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카르텔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 제조사는 정말 얼마 없으니까요.
세계적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혁신적 기술력으로 완성한 의자임에도 루이 고스트는 ‘컬렉터블 피스’와 거리가 먼 대중적인 의자입니다. 이런 지위가 앞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고 보나요?
루이 고스트의 성공은 디자이너의 유명세나 기술력뿐 아니라 대량생산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개발 및 제조 과정에서 효율을 극대화했기에 대중적 제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죠. 가구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의자가 주로 플라스틱 의자인 점도 같은 맥락이고요. 반면에 보통 컬렉터가 제품을 칭송하는 것은 희소가치 때문입니다. 만약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 루이 고스트가 ‘컬렉터블 피스’가 될 만큼 희소해진다면 그건 무척 참담한 상황일 겁니다. 나머지 수십만 개의 루이 고스트 체어가 매립지에 버려진 채로 발견되는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미 포화된 세상, 과소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디자인을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보나요?
영국 코트 반 박물관 Court Barn Museum에서 열린 전시 <크리에이티브 서클 - 친환경 디자인과 공예 The Creative Circle - Eco-Conscious Design and Craft>를 큐레이션하며 알게 된 흥미로운 의자가 있습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이네케 한스 Ineke Hans의 렉스 Rex 의자는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들었을 뿐 아니라, 원하는 만큼 사용하다가 반납하면 예치금 20파운드(약 3만 5600원)를 돌려받을 수 있는 의자입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죠. 우리는 렉스 의자처럼, 세상이 잡동사니로 가득 차게 하지 않기 위한 방식을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들에게는 덴마크 가구 제조사 칼 한센앤선 Carl Hansen & Søn을 지향점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들은 세대를 넘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거든요. 무엇보다 소비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세컨드핸드 숍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오래된 물건을 물려받아 사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 평생 사용해도 좋을 만한 가장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플라스틱 의자를 사는 걸 결코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플라스틱 의자를 구매할 거라면, 아름다우면서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는 루이 고스트를 구매하는 것을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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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LOUIS GHOST 표지

Issue.03 LOUIS GHOST

필립 스탁이 디자인하고 2002년 카르텔에서 제작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루이 고스트는 아름답고 견고하며 가볍고 투명한 의자의 대명사입니다. 18세기 바로크 양식 의자를 원형으로 하는 클래식한 디자인과 폴리카보네이트를 소재로 한 일체형 의자의 혁신은 투명하지만 존재감이 분명한 세기의 아이코닉 체어를 만들었습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함 대신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묵묵히 공간을 내어주고, 어느 곳에나 잘 어울려 누구나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품질 좋은 플라스틱 의자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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