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와 일본이 함께 담긴 의자

에디터 김선진 | 포토그래퍼 알리시아 뒤뷔


빅게임은 2004년 설립 이후 알레시, 헤이, 무인양품, 네스프레소 등 다양한 글로벌 디자인 브랜드와 협업해왔다.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3명의 친구, 오귀스탱 스코트 드마르탱빌 Augustin Scott de Martinville·그레구아르 장모노 Gregoire Jean Monod·에리크 프티 Eric Petit가 이끄는 빅게임은 단순하고 기능적이면서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이들은 가리모쿠가구가 지속 가능한 목재 가구에 주력하기 위해 2009년에 론칭한 KNS를 통해 장인 정신과 최첨단 기술, 스위스 디자인과 일본의 제작 기술 등 서로 다른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지역의 나무로 만드는 세계적 가구’라는 지향점을 실현하고 있다.

이 인터뷰는 매거진C 5호 ‘K체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Alicia Dubuois
©Alicia Dubuois
KNS, 그리고 가리모쿠가구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여러모로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은 물론 세계적으로 잘 알려졌지만, 당시엔 정말 전형적인 일본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누구나 가리모쿠가구를 알더라고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모두가 그 이름을 알았어요. 그 점이 무척 오래 기억에 남았죠. 디자인이라는 장르를 엄청 존중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젝트에 대한 아주 섬세한 브리핑을 받았고, 이후로도 매년 작업을 이어가며 이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점점 더 깨닫게 되었죠. 일본의 전통 목공 기법이 매우 정교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KNS와 일하면서 저희는 그것의 최첨단 버전을 경험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요?
KNS는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는지에 대해서는 꽤 열려 있었지만, 목재의 조건이 무척 구체적이었어요. 대부분의 제조사가 “이런 의자를 원해요. 소재는 당신이 정하세요”라고 말한다면, KNS는 “이런 소재가 있으니, 이걸로 뭔가를 만들어주세요”라는 식이었죠. 이들은 지름이 작아 가구 소재로 잘 사용하지 않던 소경목을 효율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로봇과 3D 소프트웨어, 첨단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고품질 제품을 만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많은 회사가 지속 가능성을 내세우지만 품질이 떨어지거나, 아예 지속 가능성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대다수거든요. 그런데 KNS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최적점(sweet spot)’에 있었죠.
KNS와 협업해 선보인 캐스터 Castor 시리즈에서는 KNS의 정체성과 빅게임의 심플한 디자인이 조화롭게 드러납니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우선순위는 편안하고, 콤팩트하며, 가벼운 가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편리함을 더하는 디테일도 고민했죠. 스툴과 의자는 스태킹이 가능하고, 테이블은 분해해서 운송할 수 있으며, 여러 개를 붙여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단순하고 통일된 디자인을 유지하되, KNS와 함께 높은 완성도로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캐스터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얇고 가벼운 형태라 부분 목재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일이 게 특히 어려웠거든요. 저희 디자인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만들기 어려운 형태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그 어려움을 완전히 이해하고 실현해냈어요. 디자인에 대해서는 뭔가를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저희가 기술 도면이나 3D 파일을 전달하면 언제나 가능한 한 완벽하게 재현하려고 최선을 다해요. 일례로,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는 “1mm 정도 오차가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정도인데 말이죠.(웃음)
©Alicia Dubu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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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 시리즈를 디자인할 때는 스위스나 일본의 전통적 가구 형태도 참고했다고요. 이처럼 문화적 레퍼런스를 적용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반영했나요?
캐스터 체어의 경우, 주변에서 발견한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오래 앉아도 편안한 스위스의 옛 카페 의자처럼 만들고 싶어 등받이의 각도와 치수를 그대로 따왔습니다. 일본 문화는 정말 영감받을 만한 부분이 많았어요. 우선 일본에서는 디자인의 기능성을 굉장히 강조해요. 물건이 잘 작동해야 하고, 실용적이어야 하죠. 그래서 저희는 의자가 앉았을 때 정말 편안하면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길 바랐어요. 공공장소나 가정 모두 공간이 협소한 곳이 많으니, 부피가 큰 가구는 만들고 싶지 않았죠. 스태킹이 가능하면서도 쌓아놓았을 때도 보기 좋도록 디자인했어요. 사실 KNS에서 그런 기능을 요청한 건 아니에요. 처음엔 스태킹이 가능한 스툴을 만들었고, 그걸 의자에도 적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로 자연스럽게 확장된 거예요. 그렇게 스툴 디자인으로 시작해 그다음 해엔 의자, 또 그다음 해엔 테이블, 또 그다음 해엔 로우 체어, 소파, 이런 순서로 캐스터 시리즈의 디자인 언어를 발전시켜왔습니다.
한 시리즈를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가구는 그것이 태어난 나무만큼 오래 살아야 한다”는 가리모쿠가구의 모토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하나의 시리즈를 발전시키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캐스터 시리즈는 마치 참나무처럼 아주 천천히 자라났어요. KNS와 매년 한 개씩 새로운 제품을 추가하면서 각 제품 하나하나를 정말 신중하게 고민하고 설계할 수 있었죠. 덕분에 캐스터 시리즈는 모두 하나의 가족처럼 어울리면서도,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갖게 되었어요. 등받이가 손잡이 역할을 겸하는 바 스툴, 정교하게 도장한 팔걸이를 가진 로우 체어, 단순히 성인용을 줄여 만든 것이 아니라 비율을 다시 맞춘 키즈 체어처럼요. 오래도록 공들여 만든 시리즈인 만큼, 그 정성이 제품의 수명에도 반영되길 바랍니다. 다양한 제품을 동시에 디자인하면 각각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은 반면, 캐스터 시리즈는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인 덕분에 오래 써도 만족스러울 만큼 비슷한 완성도를 보여주거든요. 몇 년 전, 나가오카 겐메이가 캐스터 체어를 보고 롱라이프 디자인이라고 말했는데, 저희에겐 그게 지금까지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어요!
KNS는 장인 정신과 최첨단 기술, 일본의 기술력과 스위스 디자인을 결합하는 등 다소 상반된 요소를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빅게임이 추구하는 ‘단순하고, 기능적이며, 낙관적인’ 디자인 철학과는 어떤 식으로 결합된다고 생각하나요?
처음 가리모쿠가구의 공장에 방문했을 때 모든 것이 놀랍도록 정돈되어 있고, 청결하게 운영되고 있는 모습이 무척 감명 깊었어요. 특히 산업용 로봇과 장인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죠.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로봇이 하고, 사람 손이 필요한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결국 양쪽의 장점을 모두 누리는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빅게임 또한 이런 균형을 매우 가치 있게 여깁니다. 첨단기술을 활용하되, 문화적 유산과 수공예적 정신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저희가 ‘낙관적(optimistic)’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술과 전통이 균형을 이루며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가는 태도 말이죠.
빅게임은 한국, 일본, 홍콩, 대만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기업, 디자인 브랜드와 협업해왔어요.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이 중에 가리모쿠가구만의 특별한 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프랑스의 가족 경영 칼 전문 제조사 오피넬 Opinel부터 스위스의 다국적 시계 브랜드 라도 Rado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기업과 협업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물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어요. 저희는 장기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가리모쿠가구와 무척 잘 맞았어요. 게다가 완성도 높은 아트 디렉션 덕분에 언제나 제품이 훌륭하게 소개될 거라는 확신이 있죠.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는 겸손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모든 일을 진지하게 대하되, 저희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그런 태도가 좋은 협업을 만들어준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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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K Chair 표지

Issue.05 K Chair

1962년 가리모쿠가구가 선보인 K체어는 단순하고 튼튼하며 본질에 충실한 ‘롱라이프 디자인’ 제품입니다. 기술과 정성, 진심을 담아 제작하는 가리모쿠가구의 품질 기준과 철학을 정립한 상징적인 의자로, 2002년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가 ‘가리모쿠60’의 K체어로 리브랜딩하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분리 및 조립이 가능한 구조로 수리가 용이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매력을 지닌 K체어는 일상 속 평범한 물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재발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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