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노새를 타고 떠난 한 큐레이터의 의자 수집기
에디터 김민정, 김선진 포토그래퍼 전미연
파리에서 고속열차 TGV를 타고 약 1시간 40분을 달리면 도착하는 푸아티에 Poitiers역.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여를 달리면 도멘 드 부아부셰에 도착한다. 프랑스 남서부 외딴 시골 마을, 자연의 품에 둘러싸인 이 성에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전 관장 알렉산더 폰 베게자크가 사유하고 향유하고자 하는 디자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C 2호 '14번 의자'에서 확인해보세요.
토네트 가구를 수집하기 위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까지 다녀왔다고요. 재미있는 일화가 많을 것 같아요.
초여름이 되면 저는 마드리드의 라스토 벼룩시장을 방문한 후 안달루시아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습니다. 친구 한 명, 말 세 마리와 함께 남부 안달루시아의 산으로 여행을 떠났죠. 당시 독재정치를 펼치던 프랑코 치하에선 지도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노새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힘들게 옮겨다녀야 했어요. 밤에는 숯불을 피운 오두막이나 말을 탄 여행자를 위한 여관에서 잠을 잤죠.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엄청 낡은 토네트 의자들을 발견한 거예요. 주인에게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니, 새 의자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아 그냥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주인에게 새 의자를 살 돈을 주고, 헌 의자들과 바꾸자고 했죠.
컬렉터 사이에서 토네트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곡목 가구를 수집한 카를 라거펠트는 경매에선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그가 곡목 가구로 꾸민 샤토 하나를 경매에 내놓음으로써 토네트 가구의 가격은 다시 안정적으로 바뀔 정도로 영향력이 컸죠. 이후 라거펠트가 멤피스와 에트로 소트사스의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저 역시 토네트의 주요 모델을 정상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어요.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을 방문했을 때 함께 과거 경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후 라거펠트가 액자에 담긴 심플한 의자 사진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컬렉션을 완성하기까지 그 여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특히 오래된 가구 카탈로그를 찾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토네트가 전 세계 지점에 카탈로그를 12개월씩만 대여했기 때문이죠. 가격이 오를 경우를 대비해 전년도 가격에 판매하지 않도록 한 방책이었는데, 이 카탈로그를 반환하지 않을 경우 한 달 치 급여의 벌금을 내야 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수집 초기엔 오래된 카탈로그를 찾는 일이 불가능했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동유럽의 옛 토네트 공장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었지만, 당시엔 그 역시 산업스파이 행위로 간주되었고요. 여행에는 가구를 수송하고 잠도 잘 수 있는 오래된 메르세데스 밴을 사용했습니다. 유럽 곳곳의 벼룩시장에서 찾은 곡목 의자를 싣고 가서 게오르크 토네트에게 보여줬고, 똑같은 것을 구하면 그에게 팔기도 했어요.
동유럽의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모험을 강행했군요.
잘못하면 투옥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공장밖에 없었기에 저와 친구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장을 방문해 사람들이 퇴근하길 기다렸어요. 6시쯤, 건축가나 엔지니어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나오면 다가가서 우리를 도와줄 수 없느냐며, 카탈로그와 브로슈어 등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끔 경찰이 우리를 멈춰 세워 무얼 하는지 묻거나 밴의 내부를 살펴보기도 했어요.
토네트의 곡목 가구가 수집가로서 당신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요소는 무엇일까요?
토네트의 성공 비결은 최소한의 재료와 노동력으로 누구에게나 합리적인 가격의 안정적 의자를 제작하는 것이었어요. 미하엘 토네트는 19세기에 이미 성공적인 가구 산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어요.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가장 큰 너도밤나무 숲 근처에 공장을 지었죠. 또 특별한 기술자가 아닌 평범한 농부 같은 비숙련자도 작업 가능한 조립 라인을 만들어 생산 프로세스를 구축했습니다. 가구 사진이 담긴 카탈로그를 통해 전 세계에 제품을 홍보하고, 의자 36개를 분해해 1m3 상자에 넣어 배송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현지 생산 제품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했고요.
특히 14번 의자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14번 의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게도 가벼워요. 한 사람이 양팔에 2개씩 들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4개씩 쉽게 옮길 수 있죠. 등나무 줄기로 직조한 좌판의 경우 착석감도 편하고, 더운 남쪽 나라에선 통풍에도 용이해요. 또 조립과 해체가 쉬워 의자의 일부가 망가져도 손상되지 않은 부품은 다른 의자를 수리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토네트 가구의 성공을 상징하는 의자죠.
14번 의자는 빈의 커피하우스로 대표되는 당대의 여가 생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등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토네트의 의자가 의도적으로 사교 활동을 촉진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 14번 의자를 탄생시킨 미하엘 토네트는 당대 오스트리아 총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빈으로 이주했고, 황제와 귀족이 머무는 궁전을 위해 일했어요. 이것이 토네트에가 새로운 가구와 용도를 생각해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하지만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의자를 구매함으로써 혜택을 누린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 이상 부모님의 가구로 집을 꾸밀 필요가 없어졌어요. 오늘날 이케아가 하고 있는 역할과 비슷하죠. 토네트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정복했습니다.
토네트의 곡목 가구는 오늘날에도 새 제품으로 양산되고 있습니다. 토네트의 디자인은 오늘날에도 유효할까요?
많은 회사가 현재도 이 일을 하고 있다면 여전히 수익성이 있기 때문이겠죠. 간단하고 실용적이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의자는 항상 필요하니까요. 저 역시 여전히 14번 의자, 25번 의자와 같은 몇 가지 모델을 매우 좋아하는데, 특히 25번 의자는 등받이에 3개의 곡목 장식이 있어 기대기에도 매우 편안해요.
오늘날에도 14번 의자는 여러 제조사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특정 브랜드만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빈티지 거래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은 저 역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창작자가 사망한 후 75년이 지나면 누구나 디자인을 재생산할 수 있어요. 그곳이 어디든 현재의 제조사가 토네트의 초기 디자인 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14번 의자를 만든다면, 오리지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변호사가 아닐뿐더러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한 참고 자료가 거의 없어요. 때때로 특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아부셰 도서관을 방문하는 변호사들이 있긴 하지만요. (웃음)
소장하고 있는 토네트 곡목 가구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가장 중점을 두고 모으는 모델이 있다면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약 20여 년 전, 제 컬렉션의 상당수를 빈 박물관에 매도했습니다. 산업디자인의 진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작품만 남겼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보유 중인 토네트 가구는 약 100여 점이지만, 아주 중요한 컬렉션으로 한정하면 50여 점에 불과합니다. 보파르트 시절의 작업들부터 합판을 겹겹이 쌓아 만든 라미네이트 샘플까지 기술, 소재, 디자인 측면에서 발전이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제품을 보유하고 있어요. 곡목 기술을 완성할 당시 가장 우아하게 만든 초기 14번 의자를 소장하게 된다면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공동 설립자로서 1989년부터 23년 동안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전체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는데요. 수집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1968년부터 가구를 수집했어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컬렉션도 늘려갔죠. 새로운 재료, 기술 및 디자인의 발전과 혁신 등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물론 영감을 주는 디자인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혹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처음 보는 순간 그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비밀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의자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산업디자인의 발전 측면에서 의자를 탐험하고 발견하는 일에 훨씬 더 흥미를 느낍니다. 무엇보다 모든 충격과 인장에 견딜 수 있는 견고하고 편안한 의자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니까요. 수많은 목수, 디자이너, 건축가가 도전해 성공한 사례는 드물어요. 이는 제가 미하엘 토네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부아부셰를 운영하며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토록 오랜 시간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부아부셰는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과 같은 해, 같은 주에 문을 열었고, 그 주에 베를린장벽도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행운의 징조라고 생각했어요. 부아부셰에서는 나중에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함께 작업한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고,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후원자들은 부아부셰의 워크숍이나 전시 주제에 관심을 보이며 우리 작업이
잘 진행되도록 도왔죠. 매우 이상적인 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관장직을 내려놓고 개인 프로젝트인 부아부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부아부셰의 여름 워크숍은 꾸준히 성장했고, 4년 전부터는 예술가 레지던스를 위한 추가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죠. 샤토에서 열리는 전시를 기획하고 이를 전 세계 곳곳에 선보이는 투어도 다니고요. 부아부셰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실질적 경험으로, 이는 오늘날 대학에선 얻기 힘든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수천 명이 부아부셰 워크숍에 참가했는데 그들 중 몇몇은 튜터가 되어 오거나 그들의 자녀가 다시 참가하기도 해요. 이 모든 것이 저로 하여금 계속 이 일을 해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NO.14
1859년 미하엘 토네트가 선보인 14번 의자는 우리에게 ‘카페 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의자는 19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카페, 레스토랑, 바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존재합니다. 미하엘 토네트는 공장식 대량생산이 가능한 곡목 및 조립 방식을 고안하고 플랫팩 포장으로 해외 유통을 실현하며, 카탈로그를 활용해 홍보하는 등 14번 의자를 통해 기술 혁신과 효율성, 대중화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구입하고 사용할 수 있는 ‘모던 체어’의 시작점엔 클래식한 디자인과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14번 의자가 있습니다.